한국일보

4년만의 LA방문… 가수 강산에씨

2004-02-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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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마음밭에 여유를 뿌립니다”

가수 강산에(본명 강영걸, 40)씨는 지금 그의 아버지에게 있어 ‘두만강 푸른 물’처럼 그리운 곳 LA에 와 있다. 지난 1999년 약 1년의 세월을 지내며 LA의 사계를 경험한 그에게 이 도시의 의미는 결코 메마른 사막이 아니다.
마음이 쑥대밭처럼 복잡하던 시절 LA에서 지낸 한 해는 그의 거친 자아를 강가의 돌처럼 둥글게 만들어주었다. LA에 대한 그의 기억은 그래서 항상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을 것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의 대상이다.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아티스트 친구 최연우씨의 아틀리에에 머물고 있는 그는 친구의 새로 태어난 아기, 가야와 ‘까꿍’하며 놀기도 하고 늘 어머니 또는 아내의 몫이었던 설거지도 하며 진양조로 흐르는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최연우씨는 서울에서 그를 찾아온 친구의 눈에 LA 근교의 아름다운 자연을 들여놔 주기위해 주말이면 핸들을 잡는다. 친구와 함께 찾은 조슈와 트리, 데스벨리의 고즈넉한 풍경을 그는 기억의 스케치북에 재빨리 그려 넣는다. 하늘을 향해 무제한 열려있는 공간, 그 벌판에 서 온몸으로 껴안은 햇살과 별빛으로 인해 그는 너무 여린 감성의 소유자들이 살아가기 힘든 일상을 이겨갈 힘을 공급받는다.
사막의 적막, 영원을 비춰주는 별빛들은 그의 내부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그를 일깨운다.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이 그의 내부에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상해 주는 것. 이유를 알 수 없게 그의 발걸음이 자꾸만 LA로 향했던 것은 어쩜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음악 외에 즐기는 취미가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이다. 보통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테지만 그는 가끔씩 전혀 발성연습 하려는 의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희한한 취미를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전자오락도 자주 했지만 지금은 그도 시들하다. 대신 마음 맞는 사람, 편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사물에 대한 느낌, 삶의 특별한 경험을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에 그는 온전히 몰입한다.
지난 주말 저녁 베벌리 힐스의 단오멜버니 갤러리에서는 최연우 씨의 작품전 오프닝이 있었다. 명색이 돈 받고 노래를 부르는 직업 가수인 그는 100명도 채 되지 않는 관객들을 앞에 두고 즉석 무대를 꾸몄다. 한국어로 된 노랫말을 이해할 길 없는 미국인들 앞에서 그는 쩌렁쩌렁 목소리를 높여가며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쾌지나칭칭나네”를 후렴구로 따라하라는 주문에 갤러리 안에 모인 관람객들은 한 목소리가 되어 어깨를 들썩였다.
그는 판소리, 탈춤 등 전통문화의 멋과 맛을 자신의 노래에 되살리기를 좋아한다. 그는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거침없이 표현해온,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걸출한 라이브 락 가수 가운데 하나다.
로마시대 미소년보다 유연한 몸매, 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 유약한 그의 이미지도 한 번 노래를 시작하면 그의 히트곡‘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파득거린다. 약 4년 만에 발표한 지난 7집 앨범, ‘명태’에서 그는 달라진 삶의 화두만큼이나 편안하고 소박한 음악들을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로 녹여내고 있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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