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변질된 사랑

2004-02-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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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욱 목사 (하나 크리스천 센터)

아름다운 것일수록 변질된 모습은 추하다. 화사한 꽃이 시들고 어여쁜 여인이 늙으면 그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은 변질된 사랑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기에.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사랑이란 것에 관심이 많다.
책이나 노래를 보아도 단연 사랑이란 주제가 으뜸이다. 철학자들은 깊은 고뇌 속에서, 가수들은 격한 감정 속에서, 사랑을 찾아 헤매며 노래해 왔다.
그런데 요즈음 그 사랑이 변질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답답하다. 그냥 같이 있으면 좋았던 우정이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이해타산 관계로 변해버렸다.
자식을 위해 목숨도 내놓았던 모성애가 자식을 통해 성공을 느끼고자 하는 대리만족의 방편이 되어버렸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핑계아래 자라나는 꿈나무와 함께 하는 소중한 한시간의 놀이시간이 귀찮게 느껴지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은 무식하고 무모한 결혼이 되어버렸다. 결혼식을 위한 결혼을 하는 듯한 젊은이들의 생각과 태도에서 주식투자를 할 때와도 같은 빠른 계산과 불안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현대의 크리스천들은 필요에 따라 의지할 수 있고 실질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좋으신 사랑의 하나님’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자기중심의 이기주의적 감정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욱이 슬픈 것은 어린아이들, 우리의 자녀들이 이런 변질된 사랑 속에서 그런 추한 사랑을 배우고 자라나는 것이다.
곰인형보다도 파워레인저를 좋아하는 아이들, 그림책은 5분도 들고 있기 힘들고 게임보이는 5시간이 지나도 놓지 않으려고 떼쓰는 아이들, 친구들에게 사탕 한 알을 나눠주기는 커녕 무엇을 주면 먼저 잡으려고 뛰며 뒹구는 아이들이 변질된 추한 사랑 속에서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사랑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까?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성간의 사랑에 성적인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탐욕이 되고, 자녀들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면 미래의 꿈과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돈을 사랑하면 삶의 여유가 없어지고, 성공에 목을 매면 일의 보람을 잃게 된다.
욕심 없는 사랑은 곧 희생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이런 진실된 사랑을… 우리는 과연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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