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보며

2004-0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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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침마다 일어나서 집밖에 쪼르르 길게 놓여 있는 알록달록 예쁜 꽃들과 아직도 꽃을 피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새싹들에게 물을 주는 것이 나의 중요한 하루 일과가 되어버렸다.
작년 봄에 우연히 얻은 꽃씨를 정성스레 심었던 것을 계기로 내 삶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될 줄이야. 실은, 꽃을 가꾸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비추어 지는 것이 자녀 교육에 좋다는 말을 듣고 실천하게 되었다.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엄마의 이미지가 아이들에게 넉넉하고 여유로운 정서를 지니게 한다고 하는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려서이다.
생전 처음 씨앗을 심으려고 시도해 보았던 터라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옆집에 사시는 집사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날 즈음, 이게 웬일인가 흙 사이로 파릇파릇한 싹이 돋아나는 것이 아닌가. 그 보일 듯 말 듯한 씨앗이 땅 속에 심겨져서 눈에 보이게 흙을 뚫고 나오는 새싹을 대하니 온통 신기하기만 했다
그 후 몇 주가 지나 그 싹이 자라면서 화분이 점점 비좁아지자 그 날 우리 가족은 모두 ‘감격의 모종식’을 시행했다. 깊지는 않지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종을 조심스레 큰 화분에 옮겨 심을 때의 그 감격이란......
지금은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우리 집 앞에 놓여진 화분이 제일 길게 줄을 서 있다. 옆옆집에 사시는 사모님은 ‘아니 어찌된 게 제일 늦게 시작한 그 집이 제일 기네’하고 부러움(?) 섞인 칭찬을 하곤 하신다. 처음에는 꽃씨만 심었었는데 그 후로는 재미가 붙어서 이왕 심는 김에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걸 심자 싶어 고추, 오이, 토마토, 상추를 키웠더니 한 계절 우리 집 식탁이 무공해 야채로 가득했었다.
씨앗을 심어보고 그것을 키워 그 열매를 따먹는 경험을 직접 해 보니,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시각과 생명을 아끼고 돌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 자신과 우리 성도들을 볼 때마다 기대감으로 바라보게 된다. 말씀이 심겨진 좋은 마음의 밭은 언젠가 때가 되어 열매를 맺어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는 통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말이다. 아직은 돌봄과 관심이 더 필요한 말씀의 뿌리를 내리는 단계에 있는 성도들, 이제는 단단한 흙을 뚫고 나오는 희망찬 새 싹과 같은 성도들, 그리고 이미 줄기줄기 마다 예수의 향을 맘껏 뿜어내는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가득한 성도들, 이 모두를 끝까지 품으시고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보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이 새롭게 전해져 온다.
벌써 세 살 생일을 맞은 우리 공동체를 지금까지 돌보시고 자라나게 하신 주님의 세심한 손길에 감격으로 마음이 벅차온다. 교회는 바로 주님의 몸이라고 말씀하신 그분의 우리를 향한 특별한 사랑이 여느 때보다 내 마음 깊숙이 밀려온다.

이 지 영
(LA 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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