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꿈의 마당

2004-01-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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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 현 목사 (언약교회 담임)

우리 집엔 아이가 둘 있다(아내는 늘 셋을 키운다고 말하지만). 큰 아이는 아홉 살 난 계집아이고, 작은아이는 일곱 살 난 사내아이다. 신기하고도 재밌는 것은 한 배에서 난 아이들인데도, 생김이나 성격이나 하는 짓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큰 아이는 목소리가 큰 편이다. 엄마를 부를 때면 집안이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질러대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작은아이는 불러도 대답이 없어 혼날 때가 많다. 그때마다 대답을 했는데도 엄마가 못 들은 거라는 억울한 눈물을 뚝뚝 떨군다. 유난히 큰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의 순도를 보면 분명히 대답을 하기는 한 모양인데, 들리지를 않으니 문제다.
큰 아이는 제때 먹을 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제 아비를 닮아 배고픈 걸 참는 것이 그렇게도 힘이 드는가 보다. 그러나 작은아이는 한 번 밥그릇을 시원하게 비울 때가 없다. 도대체 뭘 먹고 힘내서 저렇게 뛰어 노는지 신기할 정도다.
난, 이렇게 아이들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감사한 생각이 든다. 솔직히 때론 작은 녀석이 제 누나를 닮지 않고 왜 저럴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둘이 같지 않고 다른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자랄 때와는 사뭇 다르다. 환경이나 문화가 다르다. 그래서 힘든 일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도 학교생활이 나의 경험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여기서 교육을 받고 자란 아내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지만, 속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내가 자란 환경과는 다르기 때문에 나는 또한 감사하게 된다.
다르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때로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나와 너무 다른 아내를 보면서,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교인들을 보면서, 나와 다른 생김과 얼굴빛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는 한계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 다르다는 것 때문에 우리의 삶의 지경은 점점 더 확장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꿈을 꿀 때, 나의 상상의 나래는 항상 그 끝자락을 미처 내리지 못한다. 가늠할 수 없는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 때문에, 매번 꿈의 날개는 그 내릴 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두 아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의 지경은 꼭 두배가 된다. 나에게는, 서로 다른 아이들 때문에, 나와는 다른 아이들 때문에, 나의 한계를 넘어 맛보는 꿈의 행복이 있다.
가정은 꿈의 마당이다. 부모의 사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녀들의 꿈의 통로가 되어 주는 것이다. 우리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우리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동해와 황해를 넘어, 우리 아이들이 뛰어 넘나 들을 대서양과 인도양과 태평양을 우리 눈앞에 펼쳐 놓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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