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흉물이 명물되는 복

2004-0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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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맘 먹고 구입한 회전의자가 나날이 발전하는 가족들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한참을 꺽꺽 대더니 어느 날 사정없이 부러져버렸다. 쓸모 없는 부분은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여전히 씽씽 돌아가는 아랫부분을 사용할 방법을 찾아 고심하다가 중국식당에서 회전하는 탁자를 본 순간 ‘아하, 바로 이것이로구나’ 무릎을 쳤다.
당장에 잘 깎아놓은 둥근 판과 필요한 부속을 사다가 솜씨 좋은 남편이 그럴듯한 탁자를 완성시켰다. 삭막한 나무판이 문제였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한 끝에 가족들은 ‘엉뚱한 발상’이라고 몰아 붙이고 나는 ‘기발한 예술감각’이라고 우기는 예의 그 못 말리는 엉뚱함에 발동이 걸렸다.
집안을 뒤져 지난 달력들을 모아 쓸만한 그림들을 오려낸 후, 그것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한국의 사계절을 연출해 놓았다. 퇴색하거나 변하지 말라고 니스도 두껍게 발라주었다. 좀 요란하긴 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에 스스로 감탄했고, 가족들도 처음으로 박수를 쳤다. 우리 집에 와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탁자를 보는 이들도 아주 재미있어 했다. 단숨에 우리 집의 명물이 되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누리던 즐거움에 종지부를 찍어야할 날이 다가왔다. 화려하고 황홀하던 색채가 조금씩 엷어지더니 나중에는 소나기라도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한 하늘처럼 검푸른색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게다가 니스까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갔다. 가차없이 쏟아지는 태양 빛이 범인이었다. 대책이 없었다. ‘명물이 흉물되기’의 순간이었다. 테이블보를 씌워야겠다고 결정하던 순간 이상하게도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영원하기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만하면 됐다고 느낄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하여 아름답게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그것은 피조물인 태양 빛 아래서조차 너무 쉽게 변하고 이지러진다는 당연한 진리를 한번 더 확인한 것이라고 가볍게 여기려 했지만 허전한 마음이 한참을 갔다.
새해를 맞으며 가슴에 품은 내 작은 꿈들을 점검해 본다. 그러다가, 변질과 파괴와 후회와 상처를 담보로 한 그럴듯한 세상 것들에 속을 뺏기고, 소망을 두고, 목숨걸며 또 한해를 시작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 본다.
연약한 것을 강하게 하고, 쓰러진 것을 세우며, 낮은 것을 높이고, 죽은 것을 살려 영원을 누리게 할 그런 빛, 한결같은 사랑을 나누어 줄 그 생명의 빛을 소망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그것만이 자칫 흉물되기 쉬운 우리를 명물되게 하는 놀라운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김 선 화
(샌페드로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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