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2004-01-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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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화 선생님

천국에 계신 제 부모님 슬하에 속한 후손들은, 자식 손자 증손자 및 그 배우자들을 포함하여 무려 57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가족이다 보니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형편입니다.
지난 7월, 떨어진 혈족들을 한데 어우를 수 있는 사이버가족모임을 인터넷에 개설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70대에서부터 10대 미만의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의 삶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셋째 누님이 당신의 오래 전 경험담을 소개하였는데, 그 감동적인 내용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여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밤 두 언니와 함께 공부를 하던 중, 제가 만년필을 영어로 무엇이라 하는지 언니들에게 물었습니다(그 당시엔 볼펜이 없었지요). 언니들이 서로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마-아-ㄴ 여-ㄴ 피-이-ㄹ’ 하며 높고 낮은 악센트로 발음하는데 너무나도 그럴듯하고 신기하게 들렸습니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영어수업 시간에 이성화 선생님께서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시더니, ‘만년필이 영어로는 무엇이지?’하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의기양양하게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 ‘마-아-ㄴ 여-ㄴ 피-이-ㄹ’하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날 밤 선생님께서 우리 집으로 가정방문을 오셨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제가 발표를 잘했다고 칭찬하시며, 만년필은 영어로 ‘fountain pen’이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언니들이 제게 장난친 것을 알았지요. 제가 혹 반 아이들 앞에서 무안해할까 봐 일부러 집까지 찾아와 바른 답을 가르쳐 주신 이성화 선생님이 항상 기억납니다.”
참으로 훌륭한 선생님이십니다. 목사님의 자제였던 그분에겐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이 충만하였습니다. 벌써 올해의 마지막 달을 맞으며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지난 1년 동안 나를 스쳐 지나갔던 그 숱한 사람들 가운데, 나는 과연 몇 사람에게나 이성화 선생님 같은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투영되었을까?
2003년 12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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