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주탐험협회 김정섭 회장 산악 탐험기 (14) 기적의 생존자 ‘김예섭 대원 ‘

2004-01-1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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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간절한 절규를 하늘이 들어 주었는 지 김예섭군은 슬며시 눈을 뜨면서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예섭군은 그야말로 초인간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전력을 다해 너를 데리고 가겠다’고 위로하고 안심시켰으나 발 동상으로 걷기가 힘든데다 가슴도 다쳐 업을 수도 없거니와 온 몸이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는 중상자를 데리고 허리까지 빠지는 이 대설원을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인가.. 고 김기섭 대원의 유해 운반용 스노보드가 1캠프에 있으나 폭설 속에서 빠져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양쪽에서 부축해 내려갈 수밖에 별 도리가 없겠으나 한 사람도 아닌 세 사람이 갈 길을 눈을 다져 놓는다는 것은 너무 어렵거니와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필자나 쉘퍼들 모두가 그간 2일간 쏟아진 눈을 치우느라고 제대로 잠을 못자고 지쳐 있었다. 움직이는 것 조차 힘이 드는 산소가 희박한 고지에서 남을 부축한다는 것은 더욱이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힘닿는 데까지 가기로 하고 4명의 쉘퍼에게 럿셀(눈을 다져놓는 것)을 하라고 즉시 출발시켰고 우리는 교대로 예섭군을 부축하며 뒤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생존자가 있을 지 몰라 제 2캠프의 최대원에게 제1캠프에 있는 고소 포터 2명을 지원할 테니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도록 지리를 내린 한편 베이스 캠프에는 사람을 즉시 사마 마을에 파견, 예섭군을 큰 망태에 넣고 교대로 지고 내려갈 장정 4명을 뽑아 베이스 켐프에 올라와 예섭군이 도착하면 즉시 지고 내려갈 수 있도록 대기토록 했다.

정부 연락관에게는 정부에 헬리콥터를 요청토록 지시했다.당시 네팔에는 4인승 소형 헬기가 단 한 대 밖에 없었는데 기류 관계로 아침에만 뜨기 때
문에 그 시간에 맞춰 예섭군을 사마 마을까지 데리고 갈려면 그날 밤안으로 베이스 캠프에 도착해야 하는데 걷지 못하는 중상자를 부축하고 허리까지 빠지는 눈속을 헤치고 나가자니 속도가 너무 느려 안타까울 뿐이었다.

온 몸을 다친 중상자가 수없이 쓰러졌다 일어서야 하는 비참하고 처절한 지옥 행군을 시작한 지 6시간 만인 해질 무렵 마침내 부상자를 데리고 베이스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섭군은 살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강인한 체력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는 잠시도 쉴새 없이 망태에 실려 대기하고 있던 인부들이 지고 즉시 사마 마을로 떠났다.고소에 다쳤을 때는 산소가 많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12시가 지나서야 4명의 인부들에 의해 예섭군이 마을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필자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예섭군은 살렸으나 필자는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참담한 심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어 악몽
의 밤을 보냈다. 새벽에야 잠이 든 후 인부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깼다.
서충길 대원의 책임 하에 다음날까지 전원 베이스 캠프를 철수, 사마 마을로 집결토록 지시한 뒤 예섭군의 후송과 사후처리를 위해 베이스 캠프를 떠나게 됐다.

필자는 캠프를 떠나는 순간 지난해의 고 김기섭 대원에 이어 또 다시 15명의 부하 대원을 묻고 혼자만 떠나야 하는 심정에 눈물이 앞을 가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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