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성영락교회 떠나는 박희민 목사

2004-01-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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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주시는 그날까지 선교 헌신”

남가주 한인교계의 지도자이며 ‘어른’이었던 박희민 목사(67·나성영락교회 담임)가 은퇴한다. 후임으로 림형천 목사를 세우고 지난 6개월동안 인수인계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박목사는 원로목사로 남기를 사양하고 나성영락교회를 완전히 떠나 해외선교에 전념할 계획이다. 교인들은 그러한 박목사의 결정에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한국교회에서 때때로 갈등의 소지가 되는 은퇴목사 거취문제에 대해 깨끗한 모범을 보인 박목사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이곳 한인 커뮤니티와 교계에서 박희민 목사가 끼쳤던 영향력은 한두마디로 언급하기 힘들다. 나성영락교회가 해외 최대규모의 이민교회인 탓에, 또 30여년 역사동안 한번도 분규에 휩싸인 적이 없이 모범적으로 성장해온 ‘장자교회’인 탓에 더 그러했지만, 41년 목회생활을 통틀어 조용하고 온유한 리더십으로 존경받아온 그는 튀지 않는 언행과 스스로 본을 보이는 겸손한 모습으로 교회 안팍에서 존경 받아왔다. 은퇴후 더 역동적인 사역을 꿈꾸는 노목회자의 새출발을 축하하며. 그동안의 사역과 은퇴후의 계획, 교계를 바라보는 원로의 마음을 들어보았다. 나성영락교회는 오는 18일 오후 4시 박목사의 은퇴식을 겸한 3대 림형천 목사의 위임식을 갖는다.

박희민 목사는…

88년 나성영락교회 2대담임 부임
에티오피아 선교사역중 70년 도미


교육자 집안의 4남2녀중 4남으로 태어나 김천고등학교와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숭실대학 사학과를 수석졸업했다. 68년 에티오피아 선교사로 나갔으나 2년후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자 미국유학 길에 올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토론토대학 녹스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에서 메릴 펠로우 연구생활을 했다.
뉴욕 롱아일랜드 교회를 거쳐 74년부터 토론토한인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14년간 사역한 후 88년초 나성영락교회 2대담임으로 부임한 박목사는 지난 16년간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면서 사회적으로도 한흑기독교연맹 공동회장, 우리민족서로돕기 미주대표, 4·29 장학재단 이사장, 풀러신학교 이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회 단체와 기독교 단체들의 대표를 맡아 공헌해 왔다.
박영자 사모와의 사이에 출가한 두자녀를 두고 있으며 현재는 은퇴후 헌신할 ‘새생명선교회’의 설립에 힘을 쏟고 있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김영수 기자>

후임목사 소신목회위해 원로목사 사양
41년목회 온유한 리더십으로 존경받아

폭동후 한흑갈등 해소·북한돕기 앞장
북방·이슬람 선교차 새생명교회 설립

△은퇴후 교회를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로목사를 사양했습니다. 원로목사제도는 은퇴한 목사의 노후생활을 보살펴주기 위한 한국교회의 미덕이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폐단이 더 많지요. 아무래도 후임목사가 소신껏 목회하기 힘들고, 교인들도 양쪽 눈치를 보게 되므로 교회의 일치와 화목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상당히 조심스러워요. 다른 교회에서 일하는 원로목사들이 계시니까요. 하지만 각 교회마다 사정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은퇴후 무엇을 할 계획입니까?
▲해외선교에 헌신할 계획입니다. 북방선교와 이슬람권 선교를 위한 ‘새생명 선교회’를 이미 연방정부에 등록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 주시는 동안 선교지에 나가 현지 지도자들을 키우는 리더십 훈련 등에 헌신하려고 합니다. 젊어서 에티오피아 선교사로 2년간 사역한 적이 있는데 공산화되는 바람에 다시 돌아가지 못해서 그것이 늘 빚진 심정이 되었지요. 아울러 북한과 러시아, 우즈벡과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사역할 예정입니다. 마침 함께 은퇴하는 김대순 목사(가나안교회), 김대평 목사(나성한미교회)와 팀웍을 만들어 일하려고 합니다.
△나성영락교회에는 다시 안 돌아옵니까?
▲아주 가끔 예배에나 참석할까 해요. 그동안 우리 교회를 거쳐간 목회자가 20여명이나 되니 그 교회들에 가서 예배드리고 격려하는 일이 더 필요할 것 같네요. 유영기 목사(나성북부교회), 송광률 목사(선한청지기교회), 김성수 목사(형제교회), 문일명 목사(글렌데일한인장로교회), 이태종 목사(알래스카 동양선교교회), 임윤택 목사(LA소망교회), 황규일 목사(온교회), 홍성학목사(새한교회), 박장순 목사(가브리엘장로교회), 얼마전 한국으로 나간 림형석 목사(선한목자 장로교회)와 곧 남가주동신교회 담임으로 부임하는 손병렬 목사 등이 모두 우리 교회 부교역자로 수고한 분들입니다. 영어권에서도 샘 박, 송우석, 란 추, 양춘길 목사가 모두 성공적으로 목회하고 있지요.
△목회 연한이 어떻게 됩니까?
▲62년부터 풀타임으로 사역했으니 만 41년입니다. 이민목회는 캐나다서 14년, 미국에서 16년이니 꼭 30년 했습니다.
△목사님 부임후 나성영락교회가 많이 성장했지요?
▲88년 1월말 부임했을 때 장년 출석이 2,000명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장년 3,200명, 영어예배 800명, 아이들 1,300명 해서 총 5,300명이 주일예배에 출석합니다. 재적은 8,000명이 넘으니 그동안 2배 이상, 예산으로 치면 몇배가 늘었습니다.
△큰 교회들이 분열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성영락교회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불화 없이 모범적으로 성장해왔는데요, 그 이면에는 담임목사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봅니다.
▲어느 교회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의견일치가 쉽지 않아요. 장로들의 의견이 갈라질 때 목회자가 한쪽에 서지 말고 중재를 잘 해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일치시켜가야지, 목사가 한쪽 편을 든다든가, 자기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면 불화가 생기기 쉽습니다.
△이론은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가 봅니다. 목사님 자신의 좋은 점을 말해주십시오.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분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이니까요. 그 다음에는 대화를 통해 나의 의견을 나누면서 그분의 마음이 바뀌어지도록 기다립니다. 혹은 내 의견을 바꿀 수도 있지요.
많은 목회자들이 처음 했던 자기주장을 수정하면 권위를 상실하는 것으로 생각해 끝까지 관철하려 하는데 그것은 절대 권위의 상실이 아닙니다. 상황을 보고 정확한 현주소를 파악해 수정할 것은 수정해야지요. 교회에서는 때로 민주주의 다수결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8명이 찬성하고 4명이 반대한다고 하여 8명의 의견을 수용해버리면 나머지 4명은 상처받게 되지요. 시간을 갖고 그들 모두의 의견이 일치되도록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민교회만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이민목회의 중심단어는 컨플릭트, 즉 갈등입니다. 개인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1세와 1.5세와 2세의 갈등, 문화와 언어의 갈등… 갈등은 어디나 있지만 이민사회에서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긍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이민목회의 열쇠라고 봅니다. 갈등이 무조건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갈등을 부정적으로 다루면 불화가 생기고 긍정적으로 다루면 영적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교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했는데 특별히 보람을 느낀 사업이 있습니까?
▲4·29 폭동을 전후로 설립한 한흑기독연맹을 통해 양 커뮤니티간 갈등해소와 화해를 위해 많이 노력한 데 보람을 느낍니다. 흑인 목회자들을 한국에 데려가고, 한흑 가정간의 문화차이를 소개하는 비디오를 만들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 한국서 보내온 폭동성금 120만달러로 4·29 장학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 잘 관리해온 것이 기쁩니다.
당시 분위기에서 자칫하면 공중에서 날리기 쉬웠던 기금이었죠. 또한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을 통해 북한돕기운동을 펼친 일도 보람있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은 나중에 불미스런 의견들이 있었죠.
▲그렇습니다. 원인은 두가지인데 외적으로는 김대중 대통령 정부가 북한문제를 나서서 주도하다보니 민간차원의 그래스루트 운동이 힘을 잃게 된 것이죠. 내적으로는 개인적으로 다른 의도를 가진 목회자들이 활동되면서 신뢰를 잃게 되었습니다. 미주에서는 주춤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이 북한관계를 대표하는 NGO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계의 지도자로 일하면서 이민교회들을 보고 안타깝게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교회연합 문제입니다. 한인교회가 하나로 모여 일하면 주류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죠. 두번째로 이민교회의 윤리성입니다. 때로 일반사회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교회 자체에서 회개운동이 일어나 새롭게 변화되고 갱신해가기를 바랍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습니까?

▲교회성장 위주, 성공 위주의 물량주의 가치관에서 자유로운 순수한 목회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성장은 열심히 목회할 때 부수적으로 따라와야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죠. 요즘은 새벽기도회, 부흥회조차 그런 모습을 띄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목회자의 영성을 추구하는 일입니다. 기복적이고 만능적인 영성이 아닌, 예수님의 성령충만한 영성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자기비하, 자기부정이고, 겸손이며 스스로 가난에 처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나성영락교회를 떠나는 것이 섭섭하지는 않는지요.
▲인간적으로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 아쉬움을 은퇴사역으로 연결시켜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나성영락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해온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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