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쓰임 받지 못한 크리스마스 트리

2003-12-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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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글렌데일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지난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이곳 남가주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었습니다. 눈이 왔어야 분위기가 ‘짱’일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식구들과 함께 초대받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크리스마스 트리 파는 곳을 지나면서, 팔다 남은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떻게 될까?하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습니다. 다른 물건들이야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면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이라도 해서 팔리거나 아니면 보관했다가 내년에 다시 팔면 되지만, 크리스마스 트리는 이제 팔리지 않을 것은 뻔했습니다.

그렇다고 저렇게 젖은 트리는 불쏘시개조차도 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자신이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저 크리스마스 트리 같았지만, 2000년 전 오늘 나신 예수님 때문에 주인에게 선택되어 지금까지 쓰임을 받고 있구나. 저 빗속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오늘이 지나면 처리하기조차 곤란한 쓸모 없는 트리지만, 그러나 나는 혹시 올해 주인의 뜻대로 살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2004년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제 마음이 훈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건이나 트리나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질그릇이라도 그것에 보물이 담기면 보석함이 되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면 장난감이 됩니다. 인간의 가치도 누가 무엇으로 쓰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님께서 노벨 평화상을 받으실 때 한 기자가 비꼬아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캘커타의 버려진 아이들 200~300명 돌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을 고용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줍니다

그러자 테레사 수녀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God did not call us to be successful but faithful.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충성하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성공이 아니라 충성입니다.

코카콜라 사장이 연두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이야말로 당신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 부릅니다.

영어로 보면 오늘이란 단어와 선물이란 단어가 같습니다. 즉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비에 젖은 트리 같은 우리를 주님은 오늘도 늦지 않았다고 불러주십니다. 주님 손에 붙들리어 의미 있게 쓰임 받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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