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훈훈한 성탄절

2003-12-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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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사모

어느 추운 겨울,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날 밤. 한 여인은 피난길에 나선다. 날이 새기 전에 다리를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녀는 임신 마지막 달이다. 무거운 몸으로 뒤뚱뒤뚱 거리며 악착같이 걷는다. 그러나 그녀는 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 아기를 낳을 수밖에 없다. 아무 준비도 못한 터라 어린 아기를 싸고 안을 이불조차 없다. 핏덩이 어린 아기는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여인은 자기 옷을 벗어서 아기를 감싸 안아 준다. 혹독한 추위는 산모의 온몸을 꽁꽁 얼게 하였다. 해산한 후 따뜻하게 보호받아야 할 산모는 추위를 이길 힘이 없어 그만 아기를 안은 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지나가던 선교사 한 분이 어린 아기를 발견하자 여인이 왜 죽었는지를 곧 알 수 있었다. 이 선교사는 핏덩이 아기를 데려다가 정성껏 키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기는 어느덧 성장하여 선교사가 자기 부모가 아님을 알게 되자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선교사는 숨김없이 자세히 설명하였다. 자기를 살리기 위해 옷을 모두 벗어서 입혀주고는 추위에 그만 죽어간 사실을 알게 되자 어린이는 엄마의 무덤을 찾아갔다. 무덤 앞에 도착한 아이는 자기의 옷을 벗었다. 그리고 벗은 옷을 어머니 무덤 위에 덮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추워서 떨고 있을 때 어머니는 옷을 벗어서 저를 덮어 주셨다면서요. 저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추위와 싸우다가 그만… 그때 얼마나 추우셨어요? 이제 내 옷을 벗어 어머니를 덮어드릴게요. 어머니! 이젠 따뜻하시지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추위에 떨고 있는 이웃들에게 저의 옷을 벗어 입혀드리겠어요라고 말했다.

해마다 12월이 돌아오면 짝 잃은 외기러기들이 나의 머리 속에 찾아오곤 한다. 언젠가 홀로 되신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제 남편이 이 세상을 떠난 지 이제 1주기가 됩니다. 미국에 유학 와서 공부를 모두 마치고 학위수여식까지 무사했었는데 갑자기 소화가 안되어 진찰을 받아보니 위암말기라고 하더군요. 이제 한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려는데 이게 무슨 청천 벽력같은 소린가요! 성탄절을 1주일 앞두고 세상을 떠나셨어요. 12월이 가까워오니 마음을 가눌 수가 없군요. 누구에게도 저의 슬픔을 나눌 자가 없어요.

한없이 울고 있는 사모님의 눈물은 어느덧 나의 옛날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어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를 달래기 바빴다. 무엇으로 그를 위로해 줄 수 있겠는가? 첫 번째 돌아오는 남편의 기일, 결혼기념일, 자녀들의 졸업식, 그 중 제일 힘든 날이 첫 번째 기일이라는 것을 알려 주면서 나도 그랬다는 사실을 말해 줄뿐이었다. 먼저 겪었다는 말에 그녀는 마음을 활짝 열어제치고 마음껏 목놓아 운다.

추운 성탄절을 만나 떨고 있는 여인들의 눈물소리가 나의 귓전을 두드릴 때마다 따뜻한 이불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조용히 다가가고 싶다. 그들의 곁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동안 행복의 현주소를 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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