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와 더불어 살면 건강은‘덤’

2003-08-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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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관찰

아마도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조류 관찰자가 아니었을까. 이별을 앞둔 로미오와 줄리엣이 마지막 정을 나누며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나이팅게일인지 종달새인지 속삭이는 장면을 보면 그의 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다. 진화의 최고치에 도달하고도 날개를 갖지 못한 인류의 새에 대한 애착이 깊다. 새에게 감정을 이입시켜 홀로 된 외로움을 노래했던 고주몽의 황조가를 비롯해 새는 문학작품에 있어 가장 흔한 ‘은유’가 되어버렸다.

겨레 예술 민화에는 겁도 없이 호랑이 곁을 나는 까치, 꽃 위를 나는 방울새, 연꽃 사이를 걷는 두루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 현란할 정도의 아름다운 깃털을 누군들 화폭에 옮기고 싶지 않았을까. 오페라 마적 중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듀엣을 들을 때면 모차르트의 주변을 날며 그처럼 경쾌한 노래를 들려줬던 새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이른 아침 새들은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우리의 잠을 깨워주는 오랜 이웃.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지난 주일, 이은경(39, 자영업)씨는 딸 그레이스와 아들 윌리엄을 데리고 패사디나 이튼 캐년 네이처 센터에서 실시하는 조류 관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평소 같으면 사치스런 늦잠을 즐겼겠지만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서둔 것은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살아가는 새들의 습성 때문이었다.
오전 7시. 아직 이른 시각인데도 20여명의 아마추어 조류 관찰자들이 손마다 망원경을 들고 모여 있었다. 조류 관찰 전문가 힐 펜폴드와 함께 한 일요일 오전의 산보는 새들을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얼마 발걸음을 옮기지도 않았는데 인솔자 펜폴드가 나무 저편을 손끝으로 가리킨다. 가지 끝에 우아하게 앉아 있는 새는 모닝도브. 필드 가이드북을 비교해 보니 부리며 날개 모양이 사진과 꼭 같다.

소리가 요란한 곳을 향해 눈을 옮기니 또 다른 모양의 새, 스크럽 제이가 눈에 띈다. 새들을 찾아 수풀 사이를 걷고 눈앞에 나타난 조류를 필드 가이드와 비교해 노트에 기록하는 과정은 학창시절 자연답사 시간을 회상하게 한다.

펜폴드에 따르면 이곳 이튼 캐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들 가운데 ‘아메리칸 골드핀치’(American Goldfinch)처럼 흔한 것은 마을의 공원이나 집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녀는 화들짝 깨닫는다. 그렇고 보니 새들은 항상 우리 주변을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구나. 그 각성의 순간은 10년을 넘게 바로 옆집에 살면서도 인식조차 하지 못하던 이웃이 어느 날 성큼 다가오는 경험과 같았다.

물론 이전에도 새들을 관찰했겠지만 본격적으로 조류 관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근대 광학기술의 발전으로 높은 해상도의 망원경을 갖게 된 시기.
탐조여행 역시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레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탐조여행만큼 감동적이고 낭만적인 여행도 없을 듯 싶다.

새는 그 자체가 살아있는 자연이고 탐조여행은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수천 수백만 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힘차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은 어떤 드라마도 연출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펭귄을 보러 남극으로, 또는 초원을 보기 위해 노스다코다로 여행을 떠나는 매니아들은 범인들보다 훨씬 더 깊게 자연을 호흡하는 존재들일 게다.
아무리 소박한 색깔의 새라도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정도면 당신의 조류 관찰도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극장으로 향하는 평생 티켓, 조류 관찰은 지구상 어디에 살고 있더라도 할 수 있는 레저다. 새들이 많이 살고 있는 늪지대나 산이면 더욱 좋지만 집의 정원, 공원, 여행지 어디서든 가능하다.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체험이기에 임산부의 태교에도 아주 좋다. 조류 관찰은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레저 활동이다. ‘미 어류 및 야생보호국’(US Fish and Wildlife Service)에 따르면 약 5,130만명의 미국인들이 조류 관찰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왜 이처럼 많은 이들이 조류 관찰에 몰입할까. 이유는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 새들의 종류와 습성에 대한 연구와 조사는 조류 관찰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자연생태학자가 된 것 같은 만족감과 뿌듯함은 세상사는 재미를 더한다. 혼자서 자연을 벗삼아 해도 좋고 클럽에 가입할 경우 좋은 취미를 공유한 친구를 사귈 수 있어 더욱 좋다. 조류관찰은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자연으로 나가 새를 찾아 걷기 때문에 건강은 덤으로 주어진다.

역사적으로 새를 보고 길흉을 점쳤던 것은 고대 로마나 중국이나 동서고금이 같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 21세기에 있어서도 새들은 미래를 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특정 새들이 갑자기 증가한다거나 감소하는 현상은 생태계나 자연 현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류 관찰자 가운데 자연 환경에 대해 깨어있는 선각자,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신 인류가 많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조류 관찰을 마친 그녀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 내가 오늘 파괴해야만 하는 알은 과연 무엇일까.


♠조류 관찰을 시작하려면 :가장 먼저 망원경과 필드 가이드 서적을 마련하도록 한다. 전문가들은 Audubon Society에서 나온 망원경, Zeiss Diascopes를 추천한다. 자연에서 들고 다닐 수 있는 필드 가이드는 새의 이름을 아는 데 필요한 조류 관찰의 교과서.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할 노트와 펜도 준비한다. 평소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면 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게 된다.

필드에 나갈 때는 모자와 간편한 복장을 하도록 하고 물을 충분히 가져간다. 그 외 How to Start Watching Birds와 같은 비디오나 Birds of North America the birding CD-ROM 등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평소 새의 모습과 소리를 익혀두도록 한다.

Bird Watcher’s Digest 등의 전문 잡지도 도움이 된다. 웹사이트, www. birdwatching.com에도 유용한 정보가 많다. 전문가가 추천하는 필드 가이드 서적은 다음과 같다.

▲‘Take a Backyard Bird Walk’ 8세 이상 어린이 용. 32쪽. Jane Kirkland 지음. 휴대하기 편한 디자인에 메모용지도 딸려 있다.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새들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고 새들의 둥지를 헤치지 않으면서 조류를 관찰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상처 입은 새를 치료하는 방법 등을 서술해 자녀들이 조류 관찰에 관심을 갖게 하기에 좋은 책.

▲‘Backyard Bird Watching For Kids’ 5~12세 용. 72쪽. George Harrison 지음. 어떻게 하면 새들을 집의 정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 어떻게 새집을 마련하고 먹이와 물을 주는지 등 어린이들이 직접 해볼 수 있는 버딩 프로젝트들이 소개되고 있다.

♠Eaton Canyon Nature Center에서는 매달 세 번째 일요일 오전 8시부터 2시간 조류 관찰 전문가 힐 펜폴드(Hill Penfold)와 함께 하는 버드 워칭 클래스가 마련된다. 주소, 1750 N. Altadena Dr. Pasadena, CA 91107. 참가비는 따로 없고 망원경과 필드 가이드, 모자, 물을 지참하면 된다.
문의전화 (626)398-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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