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상 국립공원 애나카파

2003-05-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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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은 호젓하면서도 특별하다. 육지와 떨어져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색다른 분위기를 방문객에게 전달하는데 같은 바다이면서도 육지에서 바라다보는 바다와 섬에서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이 판이하게 다르게 느껴진다. 자연생태계도 육지와 매우 다른 곳이 바로 섬이다.

캘리포니아의 보물 채널아일랜드(Channel Island)는 섬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경치로도 유명하지만 육지와 비교적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남가주 그 어느 곳과는 다른 자연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채널아일랜드 중에서 육지와 가장 근접한 애나카파(Anacapa) 섬만 방문해도 봄철인 요즘, 어미 따라 바닷가를 기어다니는 아기 바다사자의 귀여운 모습과 수천 수만마리의 갈매기들이 봄철 산란기를 맞아 알을 품고 있는 장관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뭍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희귀종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야생화의 행렬도 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구경거리이다.

세계에서 3번째로 섬이 많다는 한국에서 살다와서 그런지 가끔 섬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채널아일랜드는 오랜만에 한번쯤 문명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섬여행을 떠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충분히 만족시켜주고도 남는다.


이름난 화가가 그린 빼어난 수채화 한 폭을 현실세계로 이끌어낸 듯한 평화로운 섬, 채널아일랜드의 애나카파로 봄철 자연생태계 여행을 다녀왔다.

광활한 태평양을 접하고 사는 앤젤리노들이지만 섬 구경을 제대로 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관광지로 유명한 카탈리나 섬이야 가 본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좀더 북쪽에 있는 채널아일랜드의 애나카파를 구경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무인도나 다름없는 애나카파는 오래 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지금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채널아일랜드 중 가장 작은 섬인데 관광도 할 겸 색다른 하이킹을 하고 싶다면 전문가들은 바로 이 섬을 권한다. 내륙의 하이킹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경험하고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애나카파는 2차대전 발발 후 미 서부 해안의 전략 요충지로 꼽히자 정착민들을 모두 육지로 보내지고 인적이 없는 섬으로 오랜 세월 방치됐었다. 하지만 종전 이후 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전쟁 덕택에 아주 잘 보존된 해양생태계가 방문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특히 요즘은 바다사자들과 갈매기들이 새끼를 치는 시기로 방문객들은 막 태어난 야생동물들이 신비로운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벤추라에서 불과 13마일 떨어진 애나카파는 뱃길로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한다. 가끔 카탈리나로 향하는 배를 타면 시간도 2시간 이상으로 지루하면서도 멀미로 고생을 하는 편인데 애나카파로의 뱃길은 상쾌하기만 하다. 중간에 수십마리의 돌고래떼가 배 옆으로 다가와 경주를 하듯 배와 함께 장난을 치면서 물살을 가르는 진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다 안개 사이로 처음 눈에 들어오는 애나카파는 섬이라기보다도 마치 거대한 2개의 돌덩이가 수면에 둥둥 떠있는 모습이다. 배가 흔들리니 섬까지 덩달아 출렁거리는 환각에 빠지게 된다. 섬에 내리지도 않고 먼저 구경하는 것이 수천만년 동안 파도에 깎여서 이뤄진 ‘아치 록’(Arch Rock). 파도가 바위사이로 오가면서 신기한 풍경을 만들내고 있는 아치 위로 수백마리의 바다새들이 오후의 따뜻한 햇볕을 맞으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치 록 옆으로 바다를 접한 해저 동굴이 보인다. 카약(kayak)으로 동굴을 구경하는 관광이 있다고 하는데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절벽 사이로 막 태어난 인형 같은 바다사자 새끼들이 어미젖을 빨고 있다. 게으른 듯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물개들 사이로 펠리컨이 긴 날개를 피면서 기지개를 하고 있다.

선착장에 내려서 153단이나 되는 긴 계단을 올라가면 섬 표면에 닿는다. 이 곳 유서 깊은 등대 옆 건물에 임시 거주하고 있는 레인저가 반갑게 방문객을 맞는다. 건물에는 공원 전시관도 있는데 이 곳의 원주민이었던 추마시 인디언들의 유적 등이 보인다. 레인저가 안내 하는데로 팀을 따라 하이킹을 할 수 있으며 독자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혼자 하이킹을 해도 된다.


섬을 한바퀴 도는데 한 시간 밖에 안 걸리는 전장 2마일의 하이킹 트레일 사이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갈매기들이 2~3개의 알을 품고 있는데 사람이 가까이 가면 경계하듯 지저귐을 높인다. 갈매기 새끼들이 어미새를 부르는 모양이 너무나 귀엽고 아름다운데 어린 새들을 가차없이 습격하는 매들의 모습에서 생태계의 매정함을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섬표면 전체가 아이스 플랜트라는 선인장과 식물로 덮여 있다. 원래는 육지에서 옮겨져 심어진 식물인데 강한 생식율로 이 섬의 메인 식물이 됐다. 지난달까지 한창 꽃을 피웠다가 지금은 시들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도 보라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노란 유채꽃과 비슷한 야생화도 한창이다.

트레일의 엘리베이션 게인이 고작 100피트 정도로 경사가 없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쉽게 부모와 함께 하이킹을 즐길 수 있으며 배가 도착해서 다시 돌아가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쉬엄쉬엄 바다 경치를 감상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오면 된다.

레이저 설명에 따르면 애나카파에는 이 섬에서만 자라는 수십종의 귀화요초가 있으며 바다사자는 물론 바다코끼리, 물개, 펠리칸 등 각종 해양 동물로 남가주 인근에서 보기 드문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쓰레기는 방문객이 직접 도로 갖고 와야한다. 섬 한켠에 캠핑장이 있는데 전문가들은 요세미티, 킹스캐년 등과 함께 이 곳을 캘리포티아 10대 캠핑장으로 꼽는다. 시설이 뛰어난 곳은 아니지만 여느 캠핑장과는 전혀 다른 환경의 초자연 속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배편이 예약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예약을 받는다. 예약 전화 번호는 800-365-CAMP.

▲애나카파 배편 및 관광 문의

애나카파를 포함한 채널 아일랜드의 방문객 안내소는 벤추라 항(1901 Spinnaker Dr. Ventura CA.·805-658-5730, www.nps.gov/chis)에 있으며 안내소 바로 옆에 아일랜드까지 배편과 각종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아일랜드 패커스(www.islandpackers.com·805-642-1393)사가 자리잡고 있다.
옥스나드 항에서도 출발하는 아일랜드 패커스는 최근 섬까지 종전의 시간을 30% 단축하는 쾌속정 ‘아일랜드’호를 구입, 운항하고 있다. 80인승인 이 선박은 샌타바바라 채널 해안의 비교적 높은 파도를 가볍게 뚫고 애나카파까지 단 45분에 도착한다.
승선료는 애나카파 섬의 경우 성인 37달러, 어린이 20달러이며, 다른 채널아일랜드인 샌타 크루즈(Santa Cruz)는 성인 42달러, 어린이 25달러 등이다. 이밖에 섬에 내리지 않고 주위만 돌아보는 크루즈(성인 28달러) 등 20여개의 프로그램이 있다.
대부분의 배편은 아침에 8시에서 10시 사이에 출발하고 오전에 승객을 섬에 내려놓고 갔다가 오후 4시경 와서 데려 온다. 프로그램마다 출발하는 시간과 날짜가 다르기 때문에 꼭 스케줄을 알아보고 항구에 도착해야 한다.

▲벤추라 하버 빌리지

애나카파를 방문하면서 배가 떠나는 벤추라 하버 빌리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평화로운 부두가를 배경으로 스페니시풍의 건물과 식당 그리고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이 곳은 LA의 샌피드로나 마리나 델 레이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붐비지 않아 좋다. 특히 항구의 도시인 만큼 시푸드(seafood) 레스토랑이 많은데 생선 튀김 전문점인 안드리아스(www.andriasseafood.com, 805-654-0546)는 주말이면 식당 밖으로 사람의 줄이 이어질 만큼 유명한 곳이다. 스테이크과 랍스터로 유명한 스피너커(Spinnaker, 805-658-6220)와 그리스 음식의 더 그릭(www.greekventuraharbor.com, 805-650-5350)도 꼭 들려볼 만 하다.

하버 빌리지는 각종 레크리에이션으로도 유명한데 하버에서 요트를 빌리거나 초보자도 탈 수 있는 카약, 카누를 타고 인근 바닷가를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하버를 40여분 동안 한바퀴 돌아보는 베이 퀸(Bay Queen, 805-642-7753) 관광은 1인당 8달러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36개의 말이 설치된 대형 ‘빌리지 회전목마’(Village Carousel, 805-644-3234)도 있다. 각종 아케이드 게임과 선물가게가 마련된 회전목마에서는 생일파티고 열 수 있다. 주말에는 어린이 놀이터(Village Lawn Kid’s Harborland, 805-644-0169)가 만들어진다. 망아지 타기(Pony Rides, 805-933-1591)도 있다.

채널아일랜드로의 스쿠버 다이빙 투어가 유명한데 리버티(Liberty, 805-642-6655 www.westcoastdiver.com), 피스(Peace, 805-984-2025, www.peaceboat.com) 등의 다이빙 보트가 출항한다. 강태공들을 위한 낚시배(Harbor Sportingfishing, 805-658-1060)도 매일 출항한다.
가는 길은 LA에서 101번 벤추라 프리웨이 노스를 타고 가다가 벤추라시에는 나오는 Seaward Ave.에서 내린다. 바다쪽으로 차를 돌려 프리웨이 다리를 넘어서 바로 나오는 Harbor Bl.에서 좌회전 3마일 정도 남쪽으로 향하면 Spinnaker Dr.가 나오면서 빌리지 사인이 보인다. 이 곳에서 우회전 빌리지로 들어가면 된다. 채널아일랜드 방문객 센터와 아일랜드 패커스는 빌리지 안쪽 깊숙이 들어가서 나온다. 빌리지 문의: (805)642-8538, www.venturaharborvill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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