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귀로 마시는 달콤한 술 재즈의 유혹

2003-05-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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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도대체 재즈란 어떻게 즐겨야 하는 거냐고. “그냥 눈을 감고 온 몸을 음악에 맡겨봐. 뭐가 느껴지니?” 친구의 말대로 몸에 힘을 빼고 음악에 전신을 내맡겨 본다. 와인을 마시지 않았는데 온 몸 세포의 문이 활짝 열리며 어느새 형체 없는 음악은 바람이 되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저녁하늘 붉은 노을이 되어 가슴을 울렁이게 만든다.

“...자...유?!” “음. 바로, 그거야.” 재즈를 듣는 우리는 눈을 뜨고도 꿈을 꾼다. 뉴올리언스 프렌치 쿼터의 한 재즈 바에서 온 몸을 불사를 듯 뜨거운 재즈 공연을 보고 나왔던 밤, 거리 가득 후끈 달아오른 공기가 전신에 와 닿던 소중한 느낌은 그후로도 오랜 동안 기억에 남아 살면서 자꾸만 메말라 가는 감성의 밭을 촉촉하게 해주었다.

김영효(44·사진작가)씨의 재즈 사랑은 남다르다. 어느 날 저녁 자리에 누워 있다 말고 좋아하는 재즈를 실컷 들을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카고로의 이주를 결정했을 정도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중·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하던 그는 척 만주니의 ‘산체스의 아이들’이란 곡을 듣던 순간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한다.


“가을 아침 같은 기분이었어요. 눈물 방울이 똑 하고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라면 이해하시겠어요?” 미시건 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일주일씩 계속 되는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그는 마냥 행복했다.

작년 가을 LA로 이주해 온 후에도 그의 재즈 바 사냥은 계속됐다. LA 위클리, LA 타임스 등 신문과 인터넷을 뒤진 결과 그는 10년 넘게 살아온 LA 토박이들보다 내노라하는 재즈 바를 더 많이 꽤 차고 있게 됐다. 노스 할리웃의 ‘The Baked Potato’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가득한 분위기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아하고 할리웃의 ‘Catalina Bar & Grill’은 가창력 뛰어난 뮤지션들의 수준 높은 공연이 자주 마련돼 즐겨 찾는다.


지난 주말 그는 평소 가깝게 지내는 후배 강원준(36)씨와 함께 ‘Catalina Bar & Grill’을 찾았다. 벽에는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빌리 할리데이와 마일즈 데이비스의 사진이 걸려 있어 라이브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눈으로 음악을 듣는 느낌이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냉정하면서도 우아하고 우울하면서도 희망이 넘치는 트럼펫의 다양한 음색이 흑백의 낡은 사진 한 장에서도 전해져 온다.

빌리 홀리데이는 여운을 남기는 시적 창법이 독특한 재즈 역사상 최고의 싱어. 사진 속의 그녀가 고통과 희열이 교차하는 묘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아마도 ‘I’m a Fool to Want You’를 부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날 저녁 프로그램은 뉴요커인 리 딜라리아와 그녀의 밴드의 라이브무대.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드럼에 색서폰이 결합된 이 밴드는 시종 밀고 댕기고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는 연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자기 몸짓보다 큰 콘트라베이스를 껴안고 연주하는 베이스 주자를 보며 사랑하는 여인을 애무하듯 산투리를 연주하던 조르바가 떠올랐다.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하모니를 만들어 가는 그들은 다른 길을 가면서도 화합을 깨뜨리지 않는다. 그날 아침 피아니스트가 마신 진한 커피 향, 드러머가 걸었던 산책로는 그들이 빚어내는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가까이 호흡하는 교감의 짜릿함을 어떻게 레코드가 대신할 수 있을까. 레코드 두 개는 거뜬히 살 수 있는 커버차지를 내면서도 라이브무대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장르의 음악이 인생의 쓰고 달콤한 맛을 모두 담고 있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재즈를 듣고 있으면 애잔한 슬픔, 새털처럼 가벼운 자유, 가슴 벅찬 환희가 모두 느껴진다. 때려부술 듯 거친 리듬이 공간을 가득 메울 때면 잠재된 야성을 모두 드러내 놓고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춘다.
브러시가 부드럽게 드럼을 훑으며 흐느적거리는 연주를 할 때엔 눈을 지그시 감고 꿈을 꾸듯 완전히 음악에 몰입한다.

와인에 취하는 것보다 더한 몽롱함이 전신에 스며드는 저녁, 공연이 끝나고 나선 할리웃 거리에는 두 남자의 가슴팍처럼 촉촉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LA 인근 유명 재즈 바들


▲Catalina Bar & Grill: 유명한 가수의 반짝 무대보다는 무대를 꽉 채우는 우아한 감각의 예술인이 할리웃의 세련된 재즈를 들려주는 곳. 최근 공사를 마쳐 무대는 더욱 넓어졌고 음향도 훨씬 좋아졌다. 시카고의 라이브 재즈 클럽을 추억하게 하는 분위기. 로맨틱한 분위기라 데이트 장소로도 안성맞춤.
오픈 시간: 주7일 오후 7시30분-새벽 2시30분. 커버 차지: 12-25달러. 현금과 주요 카드 모두 통용. 5월 19일 오후 8시30분과 10시30분 두 차례, 할리웃 보울의 재즈 그루라 불리는 Clayton Hamilton Jazz Orchestra의 연주가 마련된다. 1640 N. Cahuenga Blvd. Hollywood, CA 90028
(Hollywood Bl. 조금 남쪽) 주중 스트릿 파킹, 주말 발레 파킹 7달러. 전화, (323) 466-2210.

▲Gardenia Room: 16년 된 카바레 스타일의 재즈 바. 도어 오픈과 동시에 꽉 차기 시작하니 예약을 해 두는 것이 좋다.
오픈 시간: 오후 7시-10시30분. 커버 차지: 5-20달러. 현금과 주요 카드 모두 통용. 7066 Santa Monica Blvd. West Hollywood, CA 90046 (La Brea 코너) 스트릿 파킹. 전화, (323) 467-7444.

▲The Baked Potato: 뉴욕의 Small’s나 샌프란시스코의 Yoshi’s에 비교되는 LA의 대표적 재즈 바.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재즈나 스무드 재즈보다 시끄럽고 야단스러운 재즈가 주로 연주돼 옆 사람과의 대화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
오픈 시간: 오후 7시-새벽 2시. 커버 차지: 대개 10달러로 현금만 받는다. 5월11일 오후 9시30분과 11시30분 두 차례 All Star Jazz 콘서트가 마련된다. 3787 Cahuenga Blvd. North Hollywood, CA 91604 (Lankershim 코너) 전화, (818) 980-1615.

▲Babe’s and Ricky’s Inn: BB King과 Eric Clapton도 들렸던 곳으로 LA에서 가장 오래된 블루스 클럽이다. 손님들이 마마라고 부르는 여주인 로라 매 그로스는 벽에 빛 바랜 사진들을 닥다닥 붙이고 소울 푸드를 준비해 마치 20세기 초 미시시피의 클럽에 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오픈 시간: 오후 5시-새벽 2시. 커버차지: 이벤트에 따라 다르고 현금만 받는다. 4339 Leimert Blvd. Los Angeles, CA 90008 (Crenshaw와 43rd Place와 Vernon 사이) 전화, (323) 295-9112.

▲B.B. King’s Blues Club: 유니버셜 시티 워크에의 3층에 위치, 관광객과 LA 시민들이 쉽게 찾는 곳.
맥주 한 잔을 마시기에도 생음악을 즐기기에도, 블루스 음악과 소울 푸드를 맛보기에도 좋다.

오픈 시간: 월-목요일 오전 11시-자정, 금·토요일은 오전 11시-새벽 2시. 일요일은 오전 11시-오후11시. 해피 아워: 월-금요일 오후 4-7시. 커버 차지는 따로 없고 현금과 주요 카드 다 받는다. 5월 11일 오전 10시-오후 2시에는 Mother’s Day Gospel Brunch가 마련된다.
1000 Universal Center Drive Universal City, CA 91608 (유니버셜 시티 워크 내) 전화, (818) 622-5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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