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사는 하되 적은 돈으로”

2003-04-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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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타호 거주 스티븐/바니 마이어스 부부는 여름이면 바하 캘리포니아 남단 카보 샌 루카스에 있는 별장으로 날아간다. 공항에 내리면 호스트가 마중을 나와 태평양 푸른 파도가 눈앞에 넘실대는 하얀 빌라로 모신다. 부엌에는 분부대로 음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요리사가 대기하고 있고 골프나 디너 예약, 바다낚시 보트 임대도 호스트가 알아서 준비해 둔다. 100만 달러가 넘는 이 빌라를 매입하고 월급 줘가면서 시종을 부리려면 엄청난 돈이 들겠지만 마이어스는 이런 ‘귀족의 호사’를 아주 쉽게 누리고 있다.

국과 멕시코, 카리브해역에 40개 이상의 부동산과 3개의 요트, 하우스보트 그리고 벨리츠 해안 밖의 섬도 보유하고 있는 회원제 클럽 ‘프라이빗 리트리츠’(www.private-retreats.com)에 몇 년 전 가입했다.

가입비(initiation fee)가 19만5,000달러, 연간 회비 7,250달러, 별장 이용료가 하루 150달러다. 결코 적은 비용은 아니지만 귀족같은 휴가에 비하면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소비 패턴이 과거와는 크게 변했다. 호사는 하되 조심스럽게 실속을 따지는 것이 요즘 부자들의 특징이다. 최근 수년간 주식시장 폭락과 경기퇴조에 영향 받은 것이다.

집 빼고 순자산이 100만 달러 넘는 미국 부자는 2002년 현재 540만 명. 2000년의 390만명 보다 수에 있어서는 크게 늘었지만 재정적 태도는 많이 위축됐다. 목표한 부를 축적할 자신감이 팽배했었으나 요즘은 앞날을 자신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서 벌어서 일찌감치 은퇴하겠다던 90년대 유행했던 조기 은퇴란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

▶어려워도 럭서리

주식시장 몰락과 더불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풍성한 시절은 끝났지만 그 당시의 호사와 사치는 부자들은 여전히 즐기고 싶어한다.
줄여야 할 사정이 생겨도 최소한 아껴서 쓰는 듯한 모습만은 보이고 싶지가 않다.
이런 부자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틈새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프라이빗 리트리츠 처럼 ‘럭서리 스타일은 즐기되 비용은 저렴하게’가 이 시장의 모토다.
보석판매점 페메젬스도 이같은 전략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업소. 보통상점에서는 3,000달러는 줘야할 럭서리 목걸이를 페메젬스(Femmegems)에서는 400달러면 거의 비슷한 것을 살 수 있다.
사치는 즐기되 돈은 예전의 일부분만 쓰려는 경향에 따라 엑서세리 비즈니스는 붐을 맞고 있다. 1,500달러짜리 정장에 돈을 투자하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엑서세리로 카버한다. 블루밍데일, 로드&테일러, 샥스등 고급 백화점들의 엑서세리 코너는 예전보다 확장됐고 매상도 크게 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럭서리 세일

사치와 절약. 두 단어의 이미지는 배반적이지만 요즘 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럭서리 세일이다.
럭서리 브랜드도 금기시했던 세일을 하고 있고 럭서리중 저가품(low end luxury)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히트 패션은 로우 엔드 럭서리다.
최고급 디자이너 의류도 저가 라인이 번성하고 있다고 럭서리 전문 리테일 컨설팅 회사인 다니저 그룹(Doneger Group)의 데이빗 울프는 전한다. 다나 캐런, 타미 힐피거, 랠프 로린 등 고급 브랜드에서도 할인이 정규적으로 실시된다.
럭서리 브랜드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저가인 브랜드가 빛을 보고 있다. 핸드백 가죽제품을 취급하는 구치(Coach)는 2002년 하반기 판매가 30%나 비약적으로 늘었다. 럭서리 시장에서도 저가정책을 유지해 왔던 덕분으로 분석된다. 구치 백은 150달러내지 350달러인데 루이비똥은 두배, 디오르는 또 이보다 두배나 비싸다.

저가 럭서리를 겨냥한 전략은 자동차 시장에서도 도입돼 큰 성공을 거뒀다. BMW, 재규어, 머시디스 벤즈는 3만달러선의 엔트리 레블 럭서리카로 큰 판매신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귀족중의 귀족인 벤틀리 마저 엔트리 레블 14만9,000 달러 짜리를 선보이고 있다.
큰 부자의 심볼인 자가용 비행기도 요즘 부자들은 옛날처럼 ‘한 대’를 그냥 덜렁 사지 않는다. 비행기 소유권을 조각 내서 매입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매일 사용하지도 않는 비행기를 전액을 지불하고 살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것.

해즐리턴 래버러토리의 은퇴한 회장 커비 크레이머는 자신의 제트기를 살 충분한 여력은 있지만 매입은 전혀 고려해 보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비행기 부분 소유 전문회사중 하나인 플라이트 옵션사(www.flightoptions.com)에서 제트기 2대에 대한 16분위 1 지분을 매입했다.
5인승 제트기에 대한 지분은 자신의 비즈니스용으로 7인승 제트기에 대한 지분은 아내와 자녀, 손자들을 위한 가족용으로 사용한다.

크레이머는 가입시 일시불로 31만2,500달러를 냈고 올해 두 비행기 50시간을 사용하는 지분에 대해 10만달러를 지불할 것이다. 신형 세스나 사이테이션 앙코르 한 대에 750만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돈도 아니다.
밥값도 아낀다. 서민들이 싼 식당 찾아가는 이상으로 밥값을 아끼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부자들도 있다. 70달러 짜리 디너가 낮에는 거의 똑같지만 가격은 38달러로 싸기 때문에 요즘은 밤 보다 낮에 찾아와 ‘저렴한 성찬’을 즐기는 고객들이 많다고 뉴욕의 한 고급식당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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