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리웃 보울 음악 대축제

2003-04-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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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봄밤 수놓을‘열정 무대’
2만 ‘한인 함성’귓가에 생생

주 한인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할리웃 보울 음악 대축제가 다음 주말인 26일로 다가왔다.
김정훈(51·의류 제조), 미선(44·주부)씨 부부는 대학 다니는 아들 범조(19)군과 함께 이날 축제에 참가할 예정. 범조군은 g.o.d.와 윤도현 밴드의 열정 넘치는 무대를 생각하느라 요즘 밤잠을 설칠 정도다. 김미선씨는 왁스와 신승훈의 분위기 있는 발라드 음악을, 그리고 김정훈씨는 패티 김과 김동규의 꽉 찬 무대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취향이 다르다보니 그동안 세 식구가 함께 즐길 만한 이벤트가 어디 있었을까. 이번 할리웃 보울 음악 대축제는 남녀노소 모든 세대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꾸며진 것이 특색. 머리 큰 이후 처음으로 아들을 대동한 가족 나들이를 할 수 있음이 김정훈씨는 못내 흐뭇하다. 지난 주말 김정훈씨 가족은 다음 주말로 다가온 콘서트에 대한 기대를 안고 할리웃 보울을 찾았다. 콘서트가 열리는 밤이면 입추의 여지없이 꽉꽉 들어차는 17,340개의 좌석이 따스한 봄볕과 살랑거리는 바람의 어루만짐에도 변함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꽃놀이가 있는 날, 춤추는 불꽃들을 바라보던 여름밤은 행복했다. 맨 꼭대기 가장 싼 좌석에 앉아 저 아래에는 도대체 어떤 경관이 펼쳐질까 궁금했던 범조군은 풀 서클과 가든 박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무대의 동그란 보울들이 그렇게 큰 줄을 그는 가까이 다가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이 다음에 여유가 있다면 시즌에 가든 박스나 테라스 박스를 구입해 부모님과 함께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늘에 별과 달을 가득 들여놓고 혀끝에는 향기로운 와인을 음미하며 귓가에 아름다운 음악을 한껏 즐기는 밤. LA에 살고 있다는 것이 축복으로 여겨지는 할리웃 보울 무대에 울려 퍼질 우리 노래들은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설마 콘서트도 없는데 우리뿐이겠지 했던 생각은 오만이었다. 보울 입구의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 아래 벤치에서 피크닉 가방을 챙겨온 커플을 만났다. 연인의 무릎에 누워 책을 읽는 여인의 표정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어디 그들뿐인가. 빨강, 초록색으로 단장한 트롤리를 타고 도착한 20여명의 관광객들은 이곳이 ‘그 유명한 할리웃 보울’이며 나탈리 콜과 냇킹 콜 부녀가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던 장소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는 감격에 젖은 표정들이다.

창 너머 알록달록 예쁘장한 물건이 가득한 기념품점(The Bowl Store)이 오프 시즌인데도 문을 열고 있었다. 피크닉 가방 세트와 와인 잔 세트에 눈이 간 것은 김미선씨뿐 만이 아니다. 아내와 함께 올 여름 더 자주 할리웃 보울을 찾기 위해 쓸만한 피크닉 배스킷 하나를 장만하고 싶었던 김정훈씨도 다양한 모델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음악과 건축, 미술 관계 화보는 언제 봐도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책들. 입구에서 만났던 커플들처럼 나무 아래 그늘에서 남편의 무릎을 베고 책을 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김미선씨는 한참 ‘오페라의 역사’ 책장을 넘겨본다. 뮤지엄 기념 샵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스카프와 액세서리도 오프 시즌 세일 중이라고 하니 부담 없는 가격으로 장만할 수 있을 것 같다.


들릴 곳은 또 하나 있다. 보울 입구에 있는 할리웃 보울 뮤지엄.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70여년의 역사를 지닌 남가주의 전통, 할리웃 보울의 어제와 오늘을 둘러볼 수 있는 사진과 모형, 유물들로 꾸며져 역사를 반추하게 하는 곳이다. 요즘 이곳 뮤지엄에서는 할리웃 보울을 비롯해 LA의 콘서트를 카메라 렌즈에 담았던 사진 작가 오토 로스쉴드(Otto Rothschild)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는 50년간 수천 회의 할리웃 보울 콘서트를 찍었던 사진 작가로 할리웃 보울 사진만 2만장이 넘는 양을 남겼다.

할리웃 보울은 항상 할리웃 영화인들의 모임 장소였다. 별처럼 화려한 그들은 무대 위에 서기도 했지만 때로는 우리들처럼 관객으로 객석에 앉아 다른 예술가들의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베티 데이비스, 프랭크 시나트라, 빙 크로스비, 루실 볼, 오드리 햅번, 주디 갈란드, 마리오 란자 등 친척 아저씨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스타들이 드레싱 룸에 앉아 있는 모습, 무대에서 리허설 하는 모습, 객석에 앉아 있는 모습들을 보자니 감회가 새롭다.


할리웃 보울 뮤지엄의 오픈 시간은 서머 시즌(6월28일~9월22일)에는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30분, 오프 시즌(9월23일~6월)에는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사이이며 입장료는 따로 없다. 문의 (323) 850-2058

■ 준비하면 좋을 것들

할리웃 보울의 좌석은 나무로 되어 있어 딱딱하다. 폭신하고 두툼한 방석을 가져가면 의자에 배기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4월 말 LA의 밤 공기는 상당히 차다. 두꺼운 겉옷과 함께 담요를 가져가면 공연 시간이 내내 안방에서처럼 따뜻하고 아늑하다.

“공연 보러 가는 거지 먹고 마시려 가나” 하겠지만 주객이 전도될 정도로 피크닉에 신경을 쓰는 이들을 보며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으면 꼭 후회하게 되는 것이 와인. 주변에서 달콤한 냄새가 폴폴 나는데 한 잔만 달라고 할 수도 없고. 플래스틱으로 만들어진 예쁜 와인 잔을 함께 가져간다면 더욱 분위기 만점.

할리웃 보울의 객석에는 향기로운 커피 냄새가 가득하다. 있으면 다 마시지도 않지만 없으면 한 모금이 아쉬운 것이 바로 커피. 스테인리스 보온병에 준비하고 커피 잔과 함께 단 맛 나는 케이크나 쿠키도 몇 조각 챙겨가자.

낭만적인 연인들은 피크닉 테이블 위도 양초와 꽃다발을 장식한다. 모처럼 만의 피크닉을 기억할 만하게 만들어줄 소품들. 양초를 가져갈 때는 성냥이나 라이터를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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