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메이카를 다녀와서

2003-03-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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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미소’에 반한 5박 6일

천혜의 경관보다 더 큰 관광자원
주민들의 꾸밈없는 접대 감동적


나흘간 14개 유명 리조트 돌아봐
현지 한인들 교회통해 시름달래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자메이카의 첫 모습은 매번 TV 광고를 통해 봐왔던 트로피칼(tropical) 열대 바다에서 물방울을 뿜으면서 올라온 절세의 미인이 귀여운 미소로 손짓을 하는 바로 그 장면이 아니었다. 자메이카 최고 수준이라는 몬테고 베이(Montego Bay) 공항은 70년대 시외버스 터미널을 연상시키는 초라한 모습으로 에어컨디션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큰 대합실에 낡은 선풍기 하나만이 털털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공항을 나와서 처음 만난 몬테고 베이 시가는 과연 이 곳이 유럽의 파리와 로마 그리고 아프리카의 이집트 등과 함께 하는 세계 10대 관광지인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별 볼일 없었다.
남가주에서 자주 방문해 온 티화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는데 단지 티화나에 비해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어 매우 한산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곧 티화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사람들의 싱그러운 미소였다.


자메이카 최대의 관광자원은 끝없이 이어지는 캐리비안의 백사장도, 수십개에 이르는 자연 폭포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수퍼 리조트들도 아니다. 자메이카의 가장 큰 재산은 이 곳 주민들의 ‘아름다운 미소‘이다.
마치 슬로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이 곳의 주민들은 언제든 여유가 넘치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꾼이 만들어내는 그런 천박한 웃음이 아닌 마음 속 깊이 평화가 가득한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는 미소를 자메이카는 지니고 있다.

공항을 나와 일행이 짐을 푼 곳은 ‘하프 문 리조트’의 식민지(colonial) 스타일 빌라. 8명이 대형 빌라에서 함께 묵는데 빌라에 소속된 3명의 메이드(maid)가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쉽게 말해 3일 동안 방문단을 서브하는 ‘하인’격인데 너무나 자상하고 편하게 투숙객을 대하기 때문에 어릴 적 시골의 사촌누나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자메이카의 대형 리조트들을 답사하는 것이었다. 자메이카 관광청의 초청으로 구성된 방문단은 나흘간 전국의 14개의 유명 호텔들을 모두 돌아보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자메이카의 리조트는 그 규모가 일반 호텔의 7~8배로 대강 보고 이야기를 듣는데도 1~2마일을 걷고, 시간도 2시간 이상이 걸린다. 방문 2일째 되던 날은 모두 6개의 리조트를 구경했는데 세계 최고 ‘리츠 칼튼’을 보면서도 짜증이 몰려왔다.


힘은 들지만 안내서나 케이블 ‘여행 채널’에서나 겨우 구경했던 리조트들을 직접 답사하니 재미는 있었다. 호텔 측에서는 화려하게 차려진 부페에서 식사를 서브했는데 하루 3끼가 모두 부페이니 여행 3일 후부터는 가방에 담아간 컵라면이 그렇게 맛깔스러울 수가 없었다.

바쁜 스케줄을 쪼개서 자메이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두 곳을 방문했다. 먼저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아름다운 열대림 사이로 천천히 흐르는 마타 브레이(Martha Brae)강을 내려오는 래프팅(rafting). 사공이 긴 막대기로 강바닥을 밀면서 뗏목이 움직이는데 주옥같은 자메이카의 노래도 불러준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자메이카 여행 안내서 커버에 자주 등장하는 던스 리버 폭포(Dunn’s River Falls). 600피트 높이의 폭포를 수영복을 입고 관광객들이 서로 손을 잡을 채로 올라간다. 잘못 발을 디디면 금방 미끄러질 것 같은데 서로 당겨주고 끌어주고 하면서 정상에 도달한다.

여행 마지막 날은 수도 킹스턴에서 한인 교민과 명예 총영사를 만났다. 현 자메이카 총리와도 절친한 사이인 이반 토마스 데설메 명예 총영사는 지금도 1년에 한국을 4회 이상 방문하는 이 곳의 유지이다.

지난 90년대 한국 대사관이 멕시코시티로 철수하자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유대가 깊었던 데셀메씨가 명예 총영사를 자진하고 나섰다.
현지 한인과 한인 방문객들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앞장서 일을 봐주는 데셀메 총영사는 이번 방문단이 온다는 소식을 라스베가스에서 듣고 비행기로 급하게 귀국했다.

데셀메 총영사는 “자메이카는 관광뿐만 아니라 사업과 투자로도 매우 가치가 높은 나라”라며 “남가주 한인 누구든 사업을 목적으로 자메이카의 관심을 보이면 내가 직접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총영사는 방문단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자메이칸 시가와 럼주를 대접했지만 가장 반가웠던 것은 약간 짭짤하면서도 신 김치였다.

마이애미에 가족을 두고 자메이카에서 전자제품 수입업을 하고 있는 문점식씨는 “개척자의 정신으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자메이카”라며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한국 음식을 서로 나누는 것이 이 곳 한인들의 유일한 낙이지만 오래 살면 살수록 이 곳이 바로 지상 천국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 백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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