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바 의류 도매상 이곳에 오면 못구할 옷이 없다

2003-03-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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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당 단돈 2불50센트

평생 회색 가사 한 벌에 의지한 수행자들의 청빈한 삶도 아름답지만 계절따라 새로운 옷 지어 입는 세간의 삶에는 또 그 나름대로의 자잘한 재미가 있다. 산과 들에 오색의 꽃들이 피어나는 봄, 옷장 안에 있는 그 많은 옷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성이 차지 않는 건 순전히 계절 탓인지도 모른다. 기분 전환용 샤핑이라면 헌옷 가게도 나쁘지 않다. 빈티지 옷가게에서 구입한 옷을 싸게 샀다고 자랑했더니 한 친구가 헌옷보다 싼 가격에 새옷을 살 수 있는데 무슨 이유로 헌옷을 사입냐고 핀잔이다. 평소 알뜰 샤핑이라면 먼길 마다 않고 찾아 다니는 스타일이라 헌옷 가격에 새옷을 살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주말 아침 이른 시간, 그녀와 함께 찾은 다운타운 의류 도매 시장에서는 과연 알록달록 색깔 화사한 옷들을 도매가보다 낮은 가격에 만날 수 있었다.
티파니 리(34)씨는 한참 유행하는 옷들이 많다. 아무리 싸게 샀다 하더라도 저 옷 다 장만하려면 돈 꽤나 썼지 싶어 도대체 어디서 그 옷들을 구입했는지를 물어봤다. 의류업계에서 오래 일한 경험을 갖고 있어 다운타운의 숨겨진 바겐을 꽤 차고 있는 그녀가 자주 샤핑에 나서는 곳은 주말 오전의 자바(Java) 의류 도매 시장.


평일 소매상들을 상대로 도매만 취급하는 자바에서는 주말 오전이 되면 클로즈 아웃 아이템과 흠집이 있는 물건, 그리고 샘플을 진열해놓고 일반인들의 발길을 기다린다. 약간 떳떳하지 못한 사연(?)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아이템들은 도매가보다 싼, 믿을 수 없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티파니 씨가 오늘 들린 곳은 다운타운 지역의 약 1,000여 개 쇼룸 가운데 샌 피드로 마트 내의 여성 의류 전문 업체들. 다운타운 의류업계의 꽃이라 할 만큼 화려한 파스텔 톤의 옷들이 봄을 맞아 가슴까지 부푼 여인들의 시선을 자극한다.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옷 종류는 거의 없다. 발랄한 느낌의 탱크탑과 티셔츠, 여성스러움을 한껏 강조한 블라우스, 나폴거리는 느낌의 드레스, 꽃 무늬가 화사한 스커트, 유행이 따로 없는 청바지, 심플한 분위기의 유니섹스 모드까지 모두 한 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운동할 때 입을 편안한 회색 면바지와 흰색 티셔츠를 하나씩 구입하고 난 뒤 다시 그 매장을 찾아 검정색으로 위아래 한 벌을 더 샤핑백에 넣었다. 얼마 전 운동을 함께 시작한 친구에게 선물로 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다. 하얀 바탕에 빨간색 꽃무늬가 들어간 탱크탑도 하나 고른다. 청바지와도 잘 매치될 것 같고 흰색 치마와 함께 입어도 산뜻한 느낌을 줄 것 같다.

며칠 전 읽었던 올 봄과 여름 패션 경향 기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시원하며 귀여운 이미지의 물방울 무늬 옷들이 유난히 시야에 많이 들어온다. 하얀 바탕에 빨강 땡땡이 무늬 스커트가 시즌 끝날 때까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자, 그렇다면 주말 자바에서는 과연 얼마나 싼 가격에 옷을 살 수 있는 걸까.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런 아이템들은 싸게는 개당 2달러50 또는 4아이템에 10달러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 바지와 드레스 등은 이보다 조금 비싸지만 대부분 10달러 안팎. 아무리 높다 해도 빈티지 스토어보다 낮은 가격이다.

물건 값이 너무 싸다 보니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옷에까지 괜스레 손길이 간다. 들었다 놓았다를 몇 번씩 반복하다가 샤핑 리스트에 적어두었던 품목이 아닌 것은 다시 내려놓기로 결정한다.


평일보다는 조금 한가하지만 LA 경제력의 중심지인 다운타운에서 딜리버리 차량이 바쁘게 들어오고 매장을 총총걸음으로 뛰어 다니는 상인들의 모습은 다소 느슨해져 있던 삶의 태도에 고무줄처럼 탱탱한 탄력을 준다.
삶이 권태스러울 때는 시장에 올 일이다.

주변에는 옷감 도매상들도 즐비해 인도 여인들의 사리처럼 화려한 색깔의 옷감들이 둘둘 말려 있다. 꽃무늬 화사한 헝겊을 떠다가 창가에 새봄맞이 커튼을 입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차를 세운다.

■ 의류 도매상가 방문 Tip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샌 패드로 마트를 중심으로 한 여성복 전문 업체들은 대개 매주 토요일 오전 9-정오 사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된다.
▲자바 의류 도매 시장은 LA 다운타운, 동서로는 Main에서 San Pedro, 남북으로는 7th St.에서 Pico Bl. 사이 일대에 밀집해 있다.
▲종류: 클로즈 아웃 아이템, 철 지난 물건, 약간의 하자가 있는 아이템, 샘플 등 다양. 모든 종류의 여성복, 남성복, 아동복 일체를 구할 수 있다.
▲가격: 아이템 당 2달러50-10달러 안팎.
▲주차: 샌 피드로 마트의 경우는 2시간에 1달러. 그 후 추가 시간당 2달러.
▲결재 방법: 현금만 통용된다.
▲유의점: 올이 풀리거나 시접이 뜯어진 것은 구입하자마자 한 번 박음질을 하면 오래 입을 수 있다.
▲의류 이외에도 다운타운 도매시장에는 원단, 신발, 귀금속, 장난감, 꽃 그리고 농수산물에 이르기까지 값싸고 질좋은 물건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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