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매장 풍경

2003-03-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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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님의 부탁을 받고 그 분과 함께 경매장을 찾아갔다. 대부분 오전 10시나 11시께 지정된 법원에서 부동산 경매가 시작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 날도 법원 밖의 그리 넓지 않은 광장 한쪽에서 경매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같이 간 손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여기가 부동산 경매하는 곳 맞느냐”고 물으셨다. 조금은 긴장하고 따라온 그 분이 상상하시기에 그림이나 보석경매도 아닌 부동산 경매를, 더군다나 은행에 차압된 집이나 건물을 법원 절차에 따라 경매를 한다면 좀더 엄숙하게(?) 할 것으로 아셨는데 이렇게 밖에 서서(?) 아무래도 엉성하고(?) 상상 밖이라는 얼굴이다.

30여명의 사람들이 선글라스에 운동화를 신고 외투도 두툼히 입고(그 날은 바람도 좀 불고 날씨가 추운 편이었다) 휴대폰을 귀에 꽂고 여기저기 몰려서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영화 촬영장에서 사용하는 포터블 의자에 앉아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단정히 양복과 넥타이에 구두를 신고 간 선비 같은 나의 손님이 “중무장하고 온 것을 보니 전부 선수 같네요” 하신다. 한국 사람들도 7~8명은 되어 보였다. 물론 그 날 경매하는 물건(?) 중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집이라든가 건물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나리라.

앞에서는 계속해서 그 날 경매 스케줄에 잡혀있던 물건 중에 경매가 취소되었거나 연기된 리스트를 불러주고 있었다. 집주인이 밀린 돈을 갚았거나 파산(bankruptcy)한 경우 또는 어떤 이유가 있을 때는 경매 스케줄이 취소 또는 연기가 되므로. 그런데 그 날은 참으로 취소된 케이스가 많기도 해서 한시간 반 이상을 취소된 케이스 듣는데 만으로 보냈다. 아직 경매는 시작도 안됐는데 다리가 아프시다면서 운동화 신고 온 선수(?)들을 이해하는 눈치셨다.

그리고는 한 케이스씩 경매를 시작했다. 각자 자기가 관심 있는 프라퍼티를 부르면 앞으로 몰려가서 정해진 최소 단위에서부터 가격이 올라간다. 인기 있는 물건은 어찌나 경쟁이 심한지 나중에는 결과적으로 일반 부동산 마켓에 나와 있는 매물에 비해 전혀 싸지 않은 값에 낙찰이 되는 경우도 많다.

조금씩 상대와 경쟁하면서 값을 올리다 보면 경쟁심, 분위기 때문에 자제력을 잃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요즘은 부동산 가격이 높아서 은행 차압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경매로 나오는 물건이 적어 운 좋게도(?) 괜찮은 물건이 나오면 경쟁이 치열해진다. 종종 여러 손님들이 내게 물어오신다. 경매에 가서 사면 정말로 싸게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참석하고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내가 오랫동안 은행 차압 매물을 취급해 왔고 은행과 거리를 많이 해온 것을 아는 주위의 많은 분들이 특별히 내게 ‘경매’에 관해서 자주 물어보시기 때문에 간단하게나마 경매장의 겉 그림을 스케치해 봤다.

끝으로 경매에 가서 부동산을 사려면 물론 현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경매에 나온 매물에 대해서 조사를 꼼꼼히 해서 1차, 2차 혹은 3차 어느 은행이 혹은 융자기관이 경매를 하는 것인가 반드시 알아봐야 한다. 주위의 부동산 시세도 체크해 보고, 수리비와 경비 모두를 계산에 넣어 내가 어느 물건을 얼마에 살 것인가를 정해놓고 공연히 그 날 가서 분위기에 들떠서 ‘더 주고 사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경매장에서 매번 마주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

경매장.’ 그 곳도 치열한 삶의 현장이고 사람 사는 또 하나의 모습이다.

(213)380-5050
수잔 황 <시티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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