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사람의 주말나기 “한국-한국인에 홀딱 반해”

2003-03-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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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들로 산으로 바람을 쏘이러 떠나는 주말 오전 연세어학당의 한국어 교실에서는 진지하게 한국어를 공부하는 성인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등 떼밀어 보낸 한국 학교도 아니건만 학생들의 눈동자에서는 초롱초롱 빛이 난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한국인 대학생과 직장인이 대다수를 차지한 10여 명의 고급반 학생들 틈새에 초록색 눈의 스캇 맥멀린(Scot MacMullen)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그는 무슨 연유로 한국어를 배우게 됐을까. 함께 일하던 한국인 직장 동료의 생일 파티 때 난생 처음 한인타운을 방문하게 된 그는 맛깔스런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 한국인에게 홀딱 반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노랫소리로 느끼는 것처럼 그의 귀에 한국어는 감미로운 음악이었다. 식당의 메뉴며 간판으로 대한 한글의 생김새는 건축물처럼 조화롭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친구는 한국말이 그리 어려운 언어가 아니라며 한국어 선생 되기를 자청했다. 친구에게 만날 때마다 조금씩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도저히 성에 차지 않던 그가 처음 연세어학당의 문을 노크한 것은 3년 전의 일. 그 동안 한국 영화와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한국 문화원도 부지런히 들랑거렸다.


쇠고기라면 입에도 대지 않던 그였지만 한 번 갈비의 맛을 본 후에는 그 유혹적인 맛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한다. 보쌈과 김치찌개, 육개장 등 매콤한 음식도 아주 좋아한다. 이제 한국 식당에 가면 누구의 도움 없이도 주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게 됐다.

그는 한국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과거 생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한국과의 인연에 소름이 돋는다. 어린 시절, 아무리 어머니가 음식을 개인 접시에 따로 덜어주어도 그는 동생과 내 것, 네 것 없이 나눠먹기를 즐겼다. 한국인들이 찌개와 반찬을 늘어놓고 한솥밥을 먹는 것을 보고 그는 비로소 자신의 이상한(?) 버릇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난 아무래도 전생에 한국인이었나 봐.’

그의 이런 짐작은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한국영화를 보며 더욱 굳어졌다. 영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는 30여 편이 넘는 한국 영화 DVD를 소장하고 있다. ‘주유소 습격 사건’을 볼 때에는 박장대소를 했고 ‘쉬리’를 볼 때에는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한국 영화가 할리웃의 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왁스와 신승훈의 발라드 곡을 비롯해 한국 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볼룸 댄스를 배우면 무도회장에 서고 싶어지는 법. 한국어를 연마한 그는 백두대간을 꿈꾼다. 그가 이제껏 갈고 닦은 한국어를 사용하며 한국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산사를 돌아볼 날이 그리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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