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 패트릭 축일 앞두고 체험해 본 아이리시 댄스

2003-03-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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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맞추자 희열이 솟구쳐요”

오는 17일은 아일랜드인들의 최대 축제인 성 패트릭 축일이다. 성부, 성자, 성신이 삼위일체라는 알 듯 모를 듯 오묘한 진리를 샴록 잎이라는 방편으로 가르쳤던 그는 아일랜드 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아끼는 성인. 아일랜드에 커다란 기근이 들었던 19세기 중엽, 수십만의 굶주린 아일랜드 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아일랜드 계 이민자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녹색의 신비가 감도는 아름다운 고향 땅을 등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제 더 이상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 하나 때문이었다.

성패트릭 축일을 앞둔 미국의 대도시는 술렁인다. 뉴욕과 LA 등 다인종으로 구성된 도시에서는 대규모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아이리시 펍에서는 밤이 새도록 초록색 맥주를 마셔가며 아이리시 댄스를 춘다. 일단 잔을 한번 들었다 하면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셔야 직성이 풀리질 않나, 술을 마셨다 하면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즐기지, 자녀 교육에 극성인 점을 비롯해 그들은 여러 면에서 한국인들과 참 비슷한 기질을 지녔다.


임현정(31·아로마센터 레크리에이션 디렉터)씨는 전 현대 무용단 단원을 지냈던 전문 댄서. 춤이라면 발레에서부터 현대 무용, 힙합까지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몇 해 전 리버댄스 공연을 관람한 이후에는 늘 강렬한 삶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아이리시 댄스에 관심을 가져왔다.
찾아보니 아이리시 댄스를 가르치고 있는 댄스 스튜디오도 여러 곳 있다. 우연히 들린 아일랜드 수입품 전문점에서 집어든 댄스 클래스 안내 광고지의 전화번호에 연락을 했다.

마가렛 클레어리(Margaret Cleary)는 조금 아래로 쳐진 듯 착하고 슬퍼 보이는 초록색 커다란 눈동자가 첫인상에도 아일랜드 사람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에어로빅 학생들 가운데 관심 있는 몇몇을 모아 보여준 마가렛의 시범 클래스는 첫 시간부터 뜨거운 에너지로 달구어졌다.

“팔을 양쪽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리세요. 아이리시 댄스는 손을 쓰지 않고 추는 유일한 춤입니다.” 어떤 춤이든 처음 배울 때면 항상 손과 발의 동작이 따로 놀아 어려운데 손은 그냥 놔둬도 된다니 이건 거의 거저 먹기다.
“허리를 쫙 펴시고. 자! 오른 발부터 나가볼까요.” 발을 들어 허공으로 한 번 뛰어오른 후 내딛는 스텝이 처음부터 몸에 밴 듯 익숙하게 될 리는 없다. 생각처럼 쉽지 않아 곤혹스러워하는 학생들에게 그녀는 어린 시절, 신이 나서 룰루랄라 걷던 것 같은 기분으로 발을 내딛어보라고 조언한다.

몇 번의 연습으로 금방 스텝을 간파한 임현정씨가 위로 올렸던 발을 다시 바닥에 내딛으면 쉽다고 요령을 설명해준다. 그대로 따라했더니 이제껏 엇갈리며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발걸음이 리듬과 딱딱 들어맞는다.

기본 스텝을 익힌 뒤에는 한 줄로 나란히 서 캬퓰릿가의 축제에서처럼 팔을 옆으로 들고서 군무를 시도해본다. 얼마 전 사고로 발을 다친 줄리 박 씨가 뒤로 조금 쳐지면서 줄이 흐트러지자 모두의 입에서 까르르 웃음이 새나온다. 박자를 딱딱 맞춰 일렬로 멋있게 전진을 하니 세상에 이런 희열도 흔하지 않다 싶다.

아이리시 뮤직은 피들과 율린 파이프, 틴 휘슬 여기에 작은북인 보드랜으로 구성된 사운드가 애잔한 느낌을 주지만 댄스곡들은 빠른 비트의 리듬이 신명난다. 음악에 맞추어 쉬지 않고 발을 움직이는 아이리시 댄스는 스텝 에어로빅보다 힘들만큼 운동량이 상당하다. 시작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땀이 쏟아질 정도면 짐작할 수 있을지.

하지만 재미있고 신나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는 후딱 지나가 버려 운동 효과 만점이다. 댄스 클래스에서 늘 뒷춤에 쳐져 배우는 둥 마는 둥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춤이라는 아이리시 댄스를 꼭 한 번 시도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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