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찌든 때 벗겨내니 마음도 ‘후련’

2003-02-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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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대청소

3월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대기에는 봄바람이 살랑거리고 들판에 꽃이 움트는 아름다운 계절. 하늘과 땅이 봄처녀를 맞기 위해 기지개를 편다. 겨울 동안 틈새를 막아두었던 창문을 활짝 열어제치고 봄기운을 흠뻑 들여놓으며 온 집안을 쓸고 닦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생각해 보니 학기초가 되면 학교에서도 대청소와 함께 환경미화로 봄을 맞곤 했었다. 잔 김(44·인테리어 디자이너)씨와 영 김(42·교사)씨 부부는 딸 제니퍼(11)양과 함께 봄맞이 대청소로 지난 주말을 보냈다.


쓸고 닦고 늘 하는 것이 청소. 하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 대지의 생동하는 기운을 집안에 가득 들여놓는 것으로 시작하는 봄맞이 대청소는 겨울 동안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20년 이상 한 집에 살다보니 구석구석 먼지도 많고 손때도 많이 묻어 있다.

아이 잘 낳는 여자 김영희(닥종이 인형 작가)는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청소를 잘하는 바바리아 여자들에게 항상 주눅이 든다고 했던가. 가끔씩 함께 일하는 미국인 동료의 집을 방문할 때면 영 김씨 역시 그녀들이 신기할 뿐이다.

■ 봄맞이 대청소 요령

전체 방향은 위에서 아래, 밖에서 안쪽으로 진행한다. 먼저 진공 청소기로 천장의 먼지를 흡수해 낸다. 전등은 전원을 끄고 전구가 식었는가를 확인한 뒤 물기 꼭 짠 걸레로 닦아낸다. 이때 전기가 통하는 부분이 물에 닿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전등갓에 붙은 기름때는 세제를 묻힌 걸레로 닦아낸다.

아래쪽 청소 시작은 리빙룸부터. 진공 청소기의 흡착 구멍을 소파 본체와 쿠션 사이에 집어넣으면 소파에 낀 머리카락과 먼지가 쉽게 빨려나온다. 화장실은 가장 때가 끼기 쉬운 타일 이음새 부분부터 표백제 섞은 세제를 못쓰는 칫솔에 묻혀 문지른다. 이어서 욕조, 변기, 세면대를 청소한다.

주방에서 반드시 손봐야 할 곳이 환풍기. 콘센트를 떼고 분리할 수 있는 부분을 떼어내 닦아낸다. 환풍기에 기름때가 두껍게 앉아있을 때는 면도칼로 제거한다. 얇은 기름때는 세제를 발라 30분 정도 두고 나서 다시 세제를 덧바르고 닦으면 쉽게 떨어진다. 냉장고 밑은 물을 적신 신문지를 길고 얇은 막대에 걸어 닦아낸다. 베드룸의 침대 밑도 신경 써서 청소한다.

TV 등 가전 기기에 낀 먼지와 때는 정전기 방지용 액을 묻혀 닦아낸다. 싱크대 선반은 무, 오이, 당근 조각에 중성 세제를 묻혀 닦으면 과일 성분이 알루미늄 표면에 작용해 반짝반짝 윤이 난다. 주방의 기름때는 뜨거운 물로 적신 수건을 10~20분간 표면에 덮어두어 때를 불린 후 면도기로 제거한다. 웬만한 기름때는 녹차의 티백을 모아 천에 싸서 때가 묻은 표면을 문지르면 티백 성분이 작용해 깨끗이 닦인다. 레몬이나 감자를 으깨 기름때 표면을 문질러도 잘 닦인다. 봄맞이 대청소에 도움이 될만한 웹사이트 www.doityourself.com/clean 또는 www.suite101.com/ linkcategory.



같은 24시간을 가지고 일하며 요리하며 청소는 어떻게 저토록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봄맞이 대청소를 앞두고 유난히 깔끔하게 살던 동료 다이앤과 청소 대행 회사로부터 노하우를 물어봤더니 대답은 여러 면에서 일치한다.

우선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바깥쪽에서 안쪽 방향으로 청소를 해야 먼지나 때가 퍼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치워진다고 한다. 온 가족이 앞치마를 두르고 어디부터 시작할까 살펴보니 천장의 먼지 제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리빙룸, 화장실, 부엌, 베드룸의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다. 아내와 딸은 의자를 놓아도 키가 닿을락 말락한 천장은 잔 김씨의 몫. 그는 진공 청소기로 천장의 먼지를 털어 내기 시작한다.

보기에는 잘 몰랐는데 베큠을 시작하니 거미줄도 보인다. 이 먼지를 끼고 살면서도 기침을 하지 않았다면 이상할 일이다. 물기를 꼭 짠 걸레로 전등갓과 팬의 구석구석을 닦아낸 후 다시 불을 켜보니 천지가 개벽을 한 듯 거실이 환해진다.

위쪽 청소를 마쳤으니 이제 아래쪽 차례. 소파의 쿠션을 들어내고 진공 청소기를 가동시키니 먼지와 머리카락은 물론 누구의 주머니에서 떨어졌는지 동전도 몇 개 나온다. 화장실에서 가장 지저분해지기 쉬운 부분은 타일 연결 부위. 다이앤이 일러준 대로 세제에 표백제를 섞어 못 쓰는 칫솔로 문질렀더니 거짓말처럼 반짝반짝해진다.

욕조와 변기, 세면대를 차례로 청소한 뒤 정원에서 장미도 한 송이 잘라 화병에 꽂았더니 오픈 하우스 하는 새집 못지 않다. 매일 가족들을 위해 요리하는 공간인 부엌. 구석구석 어디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는 영 김씨는 캐비닛 문을 열고 선반을 한 번씩 닦아준다. 꽃무늬가 화사한 차주전자와 찻잔, 그저 모셔놓기만 했지 생각만큼 자주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 차주전자를 닦으며 대청소를 마친 후 남편 딸과 향기로운 차를 우려낼 생각으로 그녀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자기 방 치우기가 고작이던 제니퍼도 앞치마를 입고 대청소에 동참했다. 그녀가 맡은 것은 액자들 닦는 일. 7세 때 사진액자를 닦으면서 깨달았다. ‘나 참 많이 컸구나.’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하던 즐거운 순간들이 떠오른다. 컴퓨터 게임도 좋지만 가끔씩은 사진액자들을 닦으며 추억을 되새겨 돌이켜 보는 것도 해볼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한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봄맞이 대청소는 단순하게 사는 지혜를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한데 모아 자선단체에 가져다주고 나니 실내 공간도 더욱 넓어진 느낌이다.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가운데 영혼까지 함께 깨끗해진 것 같다. 오늘 오후에는 꽃집에 들러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다 집안 가득 봄기운을 들여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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