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유천하’ 장원서씨

2003-02-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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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또다른 인생의 시작”

떠돌아다니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역마살이 끼었다고 얘기한다. 본래 살이란 인간의 능력으로 피해갈 수 없는 운명적 의미가 강한 표현. 하지만 역마살이란 것이 넓은 세상 주유하는 팔자를 뜻한다면 그 저주는 오히려 축복이라 부를 만 하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것은 요즘 말로 여행 복이 많다는 얘기. 장원서씨(54·사업)만큼 역마살이 강한 이도 드물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됐던 그의 떠남의 여정들은 머리카락 희끗해진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사업 관계로 중국과 동남아를 제집처럼 자주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행운이었던가. 일만 하기도 바쁜 와중이었지만 그는 항상 짬을 내 문화 유산이며 지구촌 사람들 사는 모습을 둘러보았다. 넓은 세상 돌아본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쓸데없는 편견과 아집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게 된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고 북경에 가면 그곳 돌아가는 이치를 따르다 보니 그는 세상에 그다지 거스르는 것이 많지 않을 만큼 마음이 넓어졌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먹는 음식이 다를 지라도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나 가슴 따뜻한 인정이 넘친다는 사실을 그는 몸으로 직접 부딪혀 가며 깨달았다.

고국으로 출장을 떠날 때도 그의 문화 기행은 계속된다. 후배와 함께 한 동강과 거제도 기행은 이제 떨어져 살다 보니 외국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고국 땅을 재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쟁반보다 커다란 조국의 달을 온 몸으로 껴안고 강물에 비친 달 그림자를 바라보던 보름밤의 추억이 있어 그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

남들은 미국 살면서도 디즈니랜드 한 번 가보기가 힘들다던데 그는 일 관계로 북미 대륙을 동서남북 종횡무진하며 좋은 구경 다 하고 다닐 수 있었으니 못내 부러울 뿐이다. 뉴욕으로 출장을 떠났을 때는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감상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금문교의 석양을 지켜보려 애쓴다. 서부 해안 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절경, 신비함이 감도는 세도나의 붉은 바위는 갈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껴 자주 찾는 곳. 언제고 내킬 때 침낭과 텐트 하나만 달랑 들고 떠날 수 있는 그는 20대 청년보다 더한 용기를 지녔다. 산수를 좋아하는 풍류객인 그는 올 여름 약 20일간의 시간을 내서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존 뮤어 트레일을 종주할 계획이다.

남들보다 지구 위에 발 디뎌본 곳이 많다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식을 줄을 모른다. 이달 첫째 주말 여행 박람회가 열린 롱비치 컨벤션센터를 찾은 것은 아직 그에게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피지 아일랜드를 홍보하는 부스에서 토속 의상을 입은 이들과 어울려 앉아 노래를 부르며 마음은 이미 쪽빛 바다가 시리도록 아름다운 카리브 해를 다녀오기도 했다.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상품을 내놓고 있는 부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을 보니 어쩜 그의 다음 행선지는 아프리카 밀림이 될 지도 모르겠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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