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이민교회와 두 여인

2002-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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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주 비슷한 두 분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이분들을 “권사”라고 부르는데 한 분은 B권사이시고 다른 분은 L권사입니다.
두 분은 동갑이고, 거의 같은 때 미국에 오셨습니다. 사실은 L권사님이 1년 정도 일찍 오셨는데, 25년 이상이 지나고 나니 같은 때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엘리트였던 것도 같고, 슬하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둔 것도 같습니다. 남편들도 동갑이고 같은 교회를 25년 이상 섬긴 것도 똑 같습니다. 이 두 분에게 똑같이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삼 남매를 모두 반듯하게 키웠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이민 오는 커다란 이유가 자녀 교육이라고들 하지만, 실제로 자녀 교육만큼 우리 이민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실패하는 분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은 어머니로서는 확실히 성공한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희생을 하였지만, 그 결과를 거둔 셈입니다.
B권사님의 자녀는 목사이고, 의사이고, 변호사입니다. L권사님은 의사, 목사사모, 교사인 자녀를 길렀습니다. 신앙과 성품 면에서도 모두들 모범이 됩니다.
저는 목사로서 몇 주 간격으로 이 두 분이 주인공이 된 뜻깊은 모임을 차례로 집례했습니다. 이 두 모임에서 자녀들이 보여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현은 내가 정말 21세기에 미국에 있는가를 의심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추어 가는 고전적(?) 효심을 그대로 간직한 우리의 1.5세 2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B권사님은 자녀들과 함께 은퇴기념 예배를 드렸습니다. 24년이 넘게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하면서 마련한 잔치였습니다. 사실 한 직장을 24년 다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B권사님의 곧고 바른 성품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L권사님을 위한 모임은 장례식이었습니다. 갑작스런 하늘의 부르심이지만 너무나 평안하게 하나님 품에 안기신 L권사님! 한 분은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예배를 드렸고, 또 한 분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시작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두 분의 새로운 시작을 집례하면서, 나는 목사가 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민자의 삶 가운데 소리 없는 모범을 보여주신 두 신앙의 어른을 축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깊은 신앙의 모습을 자녀들의 삶 속에서 그대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나에게 주어진 일에서 은퇴할 때 그리고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할 때 이 두 분들의 모습처럼 내 자녀들에게 그렇게 남을 수 있을까?
조용히 자기를 희생하면서 자녀들에게 삶으로 교훈을 가르치신 귀한 어머니들의 고귀한 삶의 가르침이 내게는 너무나 크고 벅차게 다가옵니다.

한 규 삼
(나성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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