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병들고 지친 영혼의 쉼터”

2002-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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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 사이로 마치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낙엽이 지고 나면 월동준비를 해야하는 것처럼 테미큘라 꽃동네(분원장 서 타대오 수녀)는 인생에서 찾아올 영적인 겨울을 신앙으로 준비하기에 적합한 영혼의 쉼터다. 사랑의 결핍으로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길거리에서 죽어갈 이들을 따뜻이 맞아들여 먹여주고 입혀주고 치료해주는 꽃동네.

테미큘라 지역을 꽃동네에 소개했던 윤 이레나 할머니는 음성 꽃동네와 닮았다는 느낌에 이 곳에 미국 꽃동네가 들어서길 3년 동안 간절히 기도해왔다고 한다. 서 타대오 분원장의 바램대로 끊임없이 퍼내도 줄지 않는 사랑의 오아시스가 되어 영적 갈등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맞아들일 사랑의 공동체, 테미큘라 꽃동네를 찾아보았다.

테미큘라 꽃동네를 찾아



2시간 가량 프리웨이를 달려 테미큘라에 도착해 작렬하는 태양아래 질서정연한 도시와 자연을 벗삼아 다시 하이웨이 79번 남쪽 방향으로 8마일쯤 달리다 보면 큼지막하게 한글과 영어로 쓰여진 ‘꽃동네’(Kkottongnae)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뿌연 먼지를 뒤로하고 비포장도로를 1마일 올라가면 나무 십자가와 함께 테미큘라 꽃동네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달 19일 축복식를 통해 소외 없는 세상을 향한 새로운 출발을 알렸던 테미큘라 꽃동네는 3면이 국립공원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 사막 지대에 위치하고 있지만 인근 아쿠아 티바아산 덕택에 수량이 풍부해 오랜 가뭄에도 물이 넘쳐나는 오아시스 같다.

워낙 테미큘라 지역은 2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디언 원주민이 살던 곳으로 테미큘라 꽃동네가 들어선 이 지역은 인디언들이 병을 고치러온 땅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꽃동네가 끼고 있는 산너머로 인디언 원주민 보호구역이 있고 숲 속 오솔길을 걷다보면 큰 바위 위로 원주민들이 산에 떨어져있는 도토리를 갈면서 만들었다는 바위구멍이 군데군데 보인다.

테미큘라 꽃동네에 들어서면 풀밭을 사이에 두고 사무실과 부엌, 채플, 강의실, 클럽하우스가 있는 단층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왼편에는 ‘피정의 집’(Retreat House)으로 사용될 주택 4채가 12월 완공을 예정으로 한창 개조공사를 하고 있고 맞은 편에는 아름다운 연못이 자리잡고 있다. 이외에도 캠프장, 수영장, 피크닉 장소,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는 주택, RV를 설치할 수 있도록 나눠놓은 구역 등 꽃동네를 찬찬히 구경하려면 자동차로도 족히 2시간은 걸린다.

축복식에 참석했던 꽃동네 창설자 오웅진 신부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미국 사회의 영성적 가난함을 채워 나가는 것이 미국 꽃동네가 걸어가야 할 길이며 미국사회에서 영적 갈증을 느끼는 한인들을 물론 가난함의 영성을 목말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오아시스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었다. 오신부의 뜻에 따라 128에이커의 테미큘라 꽃동네가 펼쳐 보이는 청사진은 70명 가량을 수용 가능한 ‘피정의 집’ 및 ‘피정 캠프’ 운영를 비롯 한국의 음성, 가평 꽃동네처럼 노인요양원 등의 사회복지시설, 사랑의 연수원과 영성원 건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내적 치유의 장’이다.


서 타대오 분원장과 강 필립보 수녀, 테미큘라 꽃동네가 개원도 하기 전부터 평생 봉사자를 자청하며 필라델피아에서 날아온 김씨 부부, 린우드 꽃동네가 생겼을 때부터 장기봉사를 하고 있는 정미순씨 등 9명의 식구들이 RV를 빌려 살고 있는 테미큘라 꽃동네에는 인수하기 전부터 우드척 레크리에이션차(RV) 공원에 보금자리를 꾸며 생활해오고 있는 30세대의 지역주민들이 있다. 이곳 한 달 임대료는 325달러. 조그만 RV에서 4-7명의 식구가 생활하는 저소득층 가정, 사업에 실패하고 은둔생활을 하는 가정, 도시를 떠나 자연을 찾아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웰페어와 소셜 시큐리티로 노후생활이 보장돼있고 사회복지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미국에서 128에이커나 되는 대규모의 꽃동네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한다지만 미국 꽃동네를 찾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은 그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 병들고 지친 육신을 이끌고 이리저리 떠돌아가 린우드 꽃동네로 들어왔던 정씨 아저씨는 꽃동네의 헌신적인 돌봄으로 간이식수술을 받아 새 생명을 찾고 꽃동네지기가 됐고, 86세의 무의탁노인 이 안나 할머니는 99년 린우드 꽃동네가 개원한 이래 지금까지 제1호 꽃동네 가족으로 살고 있다.

또한 양로시설에서조차 돌보길 꺼려 꽃동네에서 임종을 맞았던 이인영씨 등 소리 소문 없이 LA꽃동네를 거쳐간 사람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한국, 미국을 막론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며 사랑을 배우는 장소로 가꿔 가는 게 꽃동네의 꿈이고 한 사람도 버려지는 없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꽃동네가 꿈꾸는 세상이다.


이를 위해 미국 꽃동네가 펼치고 있는 ‘사랑의 한마음 손잡기 운동’은 10달러로 땅 한 평을 사서 꽃동네 가족에게 선물하는 사랑 나누기 운동이다. 물론 두 평도 좋고 세 평도 좋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쳐야겠다는 꿈과 결심을 가지고 천주교 사제가 됐던 오웅진 신부가 20년만에 이룬 한국 꽃동네의 기적이 미국에서 재현되기를 소망하는 한인들이 하나둘씩 이 운동에 동참하면서 미국 꽃동네의 미래는 밝기만 하다. 문의 (909)303-0421

미국 꽃동네 역사

1998년 미국 진출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고 1999년 5월 12일 다우니 꽃동네가 처음 설립됐다. 1년 후인 2000년 6월 3일 린우드에 0.8에이커의 부지와 주택 3채를 구입해, 장소를 이전했으며 같은 해 미국에서 비영리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고 2002년 10월 19일과 23일 테미큘라 꽃동네와 뉴저지 꽃동네가 각각 축복식을 가졌다. ‘꽃동네 재단(이사장 오웅진 신부)’은 테미큘라 꽃동네를 미주본부로 린우드에 위치한 LA꽃동네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시설로, 뉴저지 꽃동네는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한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꽃동네 가는길
110S→91E→ 15S→ 79S(Indio Exit)에서 좌회전해 8마일쯤 가다가 Woodchuck Road 표지판을 지나면 오른편으로 꽃동네 표지판이 보인다. 우회전해서 산 쪽으로 1마일 올라가면 된다. 주소는 37885 Hwy. 79 South Temecula, CA 92592 문의 (909)30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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