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바람 불던날’

2002-11-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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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로 들어서면서 바람부는 날이 잦다. 계절 탓일까? 맘이 가라앉아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다. 어떤 분이 석류를 한 소쿠리 따 가지고 오셨다. 우리 아버지 마고자 단추 색깔과 같은 석류 알맹이를 가만히 만져본다. 어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석류 알맹이를 꿀에 재어 두어라 오랜 해소 기침이나 천식에 많은 효험이 있단다”
곱게 물든 감잎에도 동생들과 잣치기 하던 학교 사택 마당이 그림자되어 아른거린다.
이 가을은 어린 시절 고향 생각으로 가슴이 아린다.
7년전 39살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버린 목사 동생의 기일이 있는 십일월이라 더욱 맘이 유난한가 보다.
바람 한 자락
마음 갈피 후비고 지나 가는데
그리움이 진잎되어 심연에 뒹구네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의 잔영으로
부는 바람의 끝을 쥐고
그리운 이들을 향하여 팔매짓 하네
의미없는 낙서를 하다가 텅빈 예배당으로 차를 몰았다.
“아버지!” 하고 불러본다. 감싸 안으시는 부성을 만난다. 무겁게 가라앉은 가슴에서 ‘아버지’라는 소리 외에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도 방석 4장을 일렬로 펼쳐놓고 반듯하게 누워본다. (내 아버지 집이니까) 그리고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미화야! 기도가 무엇이라 생각하니?”
순간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대답이 또 다른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기도란 나 자신을 비롯하여 이웃과 주어진 환경, 그리고 모든 아픔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야”
깜짝 놀라 자리에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내가 원하는게 빨리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내가 바라는 것과 크기가 다르다고 얼마나 속앓이를 했던가?
하나님의 이치와 나의 이치가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었던가? 그걸 깜박 잊고 있었던 거지! 그래 그것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내가 장님이었기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고난이 유익이라”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깨닫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 보는 눈, 십자가 고난의 못구멍을 통하여 세상과 이웃과 성도들을 바라보는 눈을 갖는 것, 그것이 기도하는 자가 얻게 되는 놀라운 능력이었던 것이다.
본당문을 밀고 나온다. 바람이 파킹랏에서 휴지들을 쓸고 있다. 들어갈 때 불던 바람이 아니다. 바람 냄새를 폐부 깊이 마신다.
내게 주어질 새날을 맞으러 힘있게 걸음을 옮긴다.
최 미 화(아름다운 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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