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배신당한 중년주부의 애절한 내면 갈등

2002-11-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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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먼 곳
(Far From Heaven)
★★★★★(5개 만점)

눈부시게 아름답고 우아하면서 또 지적이요 도발적인 멜로 드라마로 외양은 현란하고 내용은 극적이어서 재미와 희열을 만끽할 수 있다. 영화를 쓰고 감독한 타드 헤인스가 50년대 여성 영화의 제1인자였던 더글러스 서크 감독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작품이다.
서크는 화려하고 흥미 있는 멜로물들인 ‘위대한 집념’ ‘하늘이 허락하는 모든 것’ ‘바람 위에 쓰다’ 및 ‘인생의 모방’ 등의 감독. 그는 풍요와 건전과 복지를 누리고 살던 아이젠하워 시대 중산층들의 그럴싸한 외피 속에 잠재한 어두운 욕망과 부정 그리고 허위와 인종차별 등을 현란한 색깔과 시각미의 틀 안에서 정열적이요 섬세하고 우아하게 묘사했었다.
특히 이 영화는 록 허드슨이 젊은 정원사로 그리고 제인 와이맨이 연상의 미망인으로 나와 사랑을 나눈 ‘하늘이-’(All That Heaven Allows·1955)를 연상케 한다.
1957년 만추. 코네티컷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중산층 동네 하트포드. 지역 TV 광고판매회사 사장인 프랭크 위타커(데니스 퀘이드)와 어린 두 남매 및 흑인 하녀를 두고 사는 아름다운 중년부인 캐시(줄리안 모어)의 삶은 그야말로 그림처럼 완벽하다. 항상 짙은 화장에 원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동네 파티에 참석하거나 친한 친구 엘리노어(패트리샤 클락슨) 등 이웃 주부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섹스 농담이나 하며 소일한다.
밥 짓고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고 또 잡지나 읽는 것이 생활의 전부인 캐시의 삶은 프랭크가 동성애자임이 드러나면서 풍비박산이 난다. 혼자서 울며 속을 태우는 캐시를 염려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건장한 체구의 잘 생긴 흑인 정원사 레이몬드(데니스 헤이스버트).
캐시는 레이몬드로부터 따뜻하고 자상한 배려와 연민을 받으면서 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감정적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온 동네 가십거리가 되고 캐시는 주위의 배척을 받게 된다.
헤인스는 휘장을 하나씩 하나씩 열듯이 이야기를 차근하니 전개해 간다. 분홍, 빨강, 보라 및 호박색 등 알록달록한 의상과 하이힐과 웨이브가 진 헤어스타일 그리고 미소와 점잖은 대화와 제스처 밑에 잠복해 있는 어둡고 견딜 수 없는 욕망과 비밀이 몸부림치는 듯한 총천연색에 흠뻑 젖은 숨막힐 것 같은 형식미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제목의 디자인과 의상과 촬영과 또 화면구성 및 음악(엘머 번스타인) 등이 철저히 50년대 눈물 짜는 서크의 멜로물을 신봉하고 찬미하고 있다. 모어, 퀘이드 및 헤이스버트 등이 깊고 뛰어난 연기를 하는데 특히 베니스 영화제서 주연상을 탄 모어와 차분한 모습의 헤이스버트의 조화가 절묘하니 아름답다. 조금만 더 주인공들의 내적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보기 드물게 잘 만든 영화다. PG-13. Focus. 선셋5(323-848-3500), 센추리14(310-289-4AMC), 뉴윌셔(310-394-8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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