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절벽에 깃든 ‘8백년 숨결’

2002-10-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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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구아 인디언 유적지 몬테주마 캐슬


애리조나주의 한복판을 남북으로 달리는 17번 프리웨이에서 과히 멀지 않은 깎아 넣은 석회석 절벽에서 벽돌로 지은 ‘성’이 고독한 독수리처럼 둥지를 틀고 있다.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에 만들어진 아메리칸 인디언의 절벽 주거지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돼 있는 이곳이 바로 ‘몬테주마 캐슬 국립 유적지’(Montezuma Castle National Monument)이다.

800년 전에 만들어진 이곳에 관광객이 몰리는 시기는 여름철이 대부분. 하지만 날씨도 선선하고 인파가 몰리지 않는 요즘이 유적지를 충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유적지의 깊은 정적마저 느낄 수 있어 방문하기에 사실상 최적기이다.
그랜드캐년에서 남쪽으로 130마일. 피닉스에서 95마일 떨어진 이곳은 미대륙의 원래 주인인 인디언의 영혼과 숨결이 스며있는 곳으로 여름철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자치하면 구경도 못하고 떠나야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서기 11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몬테주마 캐슬은 계곡 바닥에서 80피트 높이에 있는 5층 정도의 규모의 흙벽돌 구조물로 내부가 구성돼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손쉽게 미치지 않은 공중 절벽에 있기 때문에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성은 바닥에서부터 일련의 사다리로 연결돼있는 것이 특징.
비버 크릭 계곡 북쪽 플라타너스들이 많이 자라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은 요즘 늦가을 해가 깊게 벽돌 틈을 비집고 들어와 여름철에는 느껴볼 수 없는 전혀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나구아(Sinagua) 인디언이 만든 성에서 북동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몬테주마 우물’(Well)이 있다. 천연 우물인 이곳에서는 인디언들이 비가 내리지 않는 계절에 대비, 정교한 수로망을 만들었는데 이 물로 옥수수, 콩, 호박 등을 재배했다.
‘몬테주마’는 원래 멕시코 아즈텍의 전설적인 마지막 황제의 이름인데 19세기경 이곳을 지나 서부로 향하던 백인 정착자들이 절벽 위의 신비로운 성이 두뇌가 비상한 아즈텍의 난민들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착각에 잘못 붙인 이름이다.
몬테주마 캐슬의 관광안내소에는 농경민들이었던 시나구아 인디언의 당시 문화상을 엿볼 수 있다. 0.3마일의 트레일에서는 절벽 위에 인상적으로 서있는 작은 부락의 경관을 볼 수 있고 후반부에는 개울이 흐르는 피크닉 장소로 연결된다.
몬테주마 캐슬은 유명 리조트가 많이 자리잡고 있는 피닉스, 예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세도나, 유령의 마을과도 같은 제롬 등과 연결되어 있어 이 지역을 방문하면서 찾으면 편리하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장하고 입장료는 1인당 3달러이다. 문의: (928)567-3322



가시는길.
LA에서 10번 프리웨이 이스트를 타고 가다가 애리조나주에 접어들어 피닉스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17번을 타고 북상, 캠프 베르데(Camp Verde)를 지나 289번 출구에서 내려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또다른 코스는 10번 이스트로 가다가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15번 노스로 갈아탄다. 바스토우 부근에서 40번 프리웨이 이스트로 바꿔 타고 애리조나에 접어들어 한참 달리면 플랙스텝(Flagstaff)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에서 17번 프리웨이 사우스를 타고 달리면 목적지에 닿는다.

<백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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