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프리카 케냐에서

2002-10-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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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떼를 치며

아프리카 땅에 와보면 가난이 자신들의 무능함 때문이기보다는 저주 때문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빈민촌이 들어서 있는 케냐 나이로비 시내의 키베라라는 빈민촌에는 시골 방방곡곡에서 도시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 70만명(또는 100만명으로 추산)이 돼지우리 보다도 못한 주거 환경 속에서 모여 살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코를 찌르는 오물악취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다. 그곳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장래의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절망들이 스며져 있었다.
창세기에는 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 중 둘째 함이 노아의 저주를 받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 노아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그대로 노출시켜 버렸던 경솔한 아들 함을 호되게 나무란 후 형 셈과 동생 야벳의 종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함에게 저주를 퍼붓는 장면이다(창세기 9장 이하).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흑인들은 바로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자손들이다. 홍수 이후 이들 세 형제는 각각 흩어져 그 곳에서 나라를 일으키고 자손들을 번창시키는 데 함족은 수천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다른 족속들의 종살이를 계속하면서 살고 있는 현실이다.
저주 가운데 가장 무서운 저주는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되는 그런 저주다. 그런데 키베라 빈민촌에 세워진 기독교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나는 희망의 씨앗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학교는 지난 8년 전 신승훈 목사(현 주님의 영광교회 담임)에 의해 설립되어 지금은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들 800여명이 재학중인 학교로 크게 성장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의무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있다.
이미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고 학교 교장선생님이 설명해 주었다.
많은 아이들의 눈동자가 달라 보였다. 그 가운데 한 명의 학생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았다. “너 여기서 살기가 힘들지 않니?” 그러자 그 학생은 “힘들기는요, 오히려 저는 요즈음 너무나도 감사할 일이 많고 그래서 또한 행복해요…” 그 학생이 드러내놓은 감사의 조건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보기에는 감사의 조건이 되지 않을 성싶은데… 이 아이를 통해 행복의 조건은 내가 얼마만큼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냐에 달린 것이라는 간단한 진리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예수는 생명이고 부활이시다.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은 바로 새 생명을 얻는 길이며 또한 대를 이어 흘러 내려오는 저주의 끈을 잘라 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이곳 케냐에서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백승환 (주님의 영광교회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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