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자리

2002-10-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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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생각

▶ 윤 효 중

내가 좋아하고 거의 매일 읽는 금강경의 두 구절이 있다. 하나는 금강경 32분중 제5분의 마지막 부분이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니 약견제상비상이면 즉견여래니라.”(온누리 온갖 만물이 모두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현상이 현상 아닌 줄 알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불교에서는 “무상”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항상 같지 않고 변한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변하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어떠한 물체도, 인간을 포함한 어떠한 생물도 언젠가는 멸한다.(생자필멸)
이십년 넘은 내 어머님의 묘를 이장하느라 파헤쳤었다. 거의 다 썩은 나무관 안에 남아 있었던 것은 두개골 일부, 치아, 한줌의 머리카락, 굵은 다리뼈 일부 등이 전부였다. 그 또한 세월이 더 흐르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 모든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운 여인이라 하여도 잠시 현재의 인연일 뿐 늙음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무심한 세월을 거부할 수는 없다. 영화배우 ‘리즈 테일러’의 50년 전, 현재, 그리고 50년 후를 상상해 보라.
두번째 구절은 제18분 끝에 나오는 “과거심도 불가득이며 현재심도 불가득이며 미래심도 불가득 일새니라”(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느니라.)
최인호씨의 책 ‘상도’에는 다음과 같은 금강경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중국에 덕산 거사라는 스님이 금강경 공부를 너무 많이 하여 금강경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어 별명마저 “주금강”이라 불렸다. 그러나 한 사찰 입구에서 만난 떡장수 노파가 그에게 “금강경에 과거심도 불가득이며 현재심도 불가득이며 미래심도 불가득이라 하였는데 그러면 스님의 마음을 어디에 점하시겠습니까?”하고 묻자 주금강은 대답을 못한 채 벙어리가 되어 물러나고 말았다 한다.
과거의 마음은 이미 흘러갔으니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왜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는 것일까? 그 답은 ‘현재’라는 단어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라고 말한 순간 현재는 이미 과거로 흘러가 버려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철학에서는 현재를 정의할 때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긴장된 순간”이라고 정의한다.
수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떡장수 노파가 내 앞에 나타나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까?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현재라고 대답을 해도, 모르겠다고 대답을 해도 어디서 큰스님의 방망이가 내게 날아올 것 같다. 왜냐하면 불자들이 추구해야 할 길은 ‘부모 미생전’ ‘사고 이전’의 마음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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