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버려졌던 대리석

2002-10-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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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떼를 치며

얼마 전 한 번 목욕비가 약 13만 달러(15만 유로)가 되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이것은 굉장한 부자의 사치에 관한 식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 다윗 상에 관한 기사였다. 3년에 걸쳐 조각한 이 작품은 당시 29세의 그를 당대 최고의 조각가로 자리매김했다.
내가 다윗 상을 좋아하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은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인 소년 다윗이 이방의 거인 골리앗과 싸움을 배경으로 한다. 조각 작품을 보지 않고 추측해 보면, 우리는 소년이 거인을 물리치고 승리를 만끽하는 힘과 열정이 주제가 일 것 같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윗의 모습은 목동 미소년의 차분한 모습일 뿐이다. 다윗 상에는 힘을 상징하는 잘 발달된 근육도 포효하는 얼굴 표정도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는 승리라는 결과와 승리 뒤에 얻어지는 영광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중요시한 것은 하나님께 집중된 소년의 의연한 자세였다. 그래서 다윗 상은 우리를 흥분시키기보다는 차분하게 한다. 하나님의 원하는 진정한 승리의 모습을 가르쳐 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위해 사용한 대리석에 얽힌 사연이다. 조각가들은 작품을 위해 좋은 돌을 찾기에 열심을 낸다고 한다. 사실 아무 돌이나 작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돌인데도 작품을 위해 선택된 돌은 수 백년을 두고 사람들이 감탄하며 바라보게 될 터이니 돌의 입장에서 보면 특권인 셈이다.
미켈란젤로에게 선택된 5m가 넘는 이 대리석이야말로 행운 중에 행운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리석은 미켈란젤로의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버려진 돌이었다고 한다. 이미 수십 년 전 아구스티노(Agostino di Duccio)라는 미술가가 이 대리석을 사용하여 아마도 같은 주제로 조각을 하다가 실패하여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성경에는 “건축가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약 1500년 뒤 미켈란젤로는 버려진 돌 하나를 취하여 조각 미술사 모퉁이의 머릿돌을 만들었다. 우리 인생이 혹시 아직도 진정한 장인(丈人)손을 맛보지 못한 채 버려진 대리석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한다. 정을 맞는 때 돌은 아플 수 있다. 그러나 정을 많이 맞아야 돌은 섬세한 조각품으로 다듬어지고, 오고가는 세대가 흠모하며 바라보는 작품이 된다. 나의 인생여정에서 맞고 있는 수많은 정들이 세상 풍파 속에서 우연히 맞는 것이 아니라, 장인(丈人)의 세밀한 계획 하에 다듬으시는 손길이 되길 기(마가복음 12:10-11)
한규삼 (나성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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