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융화할줄 알아야 참 그리스도인”

2002-10-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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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고 싶은 사람 이재철 목사 인터뷰

이재철 목사를 만나면 ‘한치의 가리움 없이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바꿔 말하면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투명하게 서있는 목회자나 크리스천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성경과 역사와 인간의 한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으로, 잘 못 되어가는 세상과 그리스도인을 향해 깨어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재철 목사를 두고 혹자는 ‘예수님과 가장 닮은 사람’ 또 어떤 이는 ‘예수 믿는 도를 통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이재철 목사를 지난 26일 만났다. 대한기독감리회 오렌지지방의 초청으로 애나하임고교 강당에서 3일간 연합성회를 가진 이목사는 한시간의 만남 동안 시종 우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인터뷰인지, 설교인지, 신학강의인지 구분되지 않는 심오한 메시지를 ‘참으로 신실하게’ 들려주었다. 그 내용을 한 페이지의 지면 속에 압축해야함을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해외 한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이재철 목사의 이야기를 정리해 소개한다. 참고로 이재철 목사는 언론과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목회자로, 이번 인터뷰는 필자와의 수년간의 교분과 여러차례 간곡한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근간 ‘참으로 신실하게’에 관하여 잡지 ‘목회와 신학’에 서면인터뷰를 가진 것을 제외하곤 일간지로서는 한국에서나 해외를 통틀어 첫 인터뷰임을 밝혀둔다.

△지난 몇 년동안 남가주에서 매년 한번씩 집회가 열렸습니다. 해외 한인교회들을 자주 찾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신학교에 다닐 때 다음과 같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40대에는 국내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50대에는 나라 밖의 인류를 위해 삶을 나눌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였지요. 주님의교회 임기가 끝날 때쯤 그 기도가 생각났고 그것이 스위스로 가게된 이유중 하나였습니다. 인류를 위해 삶을 나눌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니 내게 맡겨진 일은 해외에 살고 있는 한인들을 신앙적으로 도와 현지에서 외국인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답을 얻었습니다. 그 이후 약 3년동안 해외 한인들을 주 대상으로 약50회 집회를 가졌으며 남가주에서는 이번이 6회째입니다. 집회는 내년말까지만 계속하려고 하는데 거의 스케줄이 차있습니다.
△왜 내년말까지만 하려고 합니까.
▲처음에는 기간을 정하지 않고 다녔는데 워낙 여러군데서 요청이 오다보니 어디는 하고 어디는 하지 않고, 고른다는 것이 목회자가 할 일이 아닌 것 같고, 이렇게 무한정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임목회를 하지 않고 집회를 계속 다니면 부흥사가 되는 것인데 그건 제가 가야할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내년 말까지로 기간을 정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책을 쓰는 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목회는 더 이상 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있고 행정이 있는 목회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목회 13년을 돌아보면 ‘예배당 없는 목회’였는데 앞으로는 ‘교회 없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나누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목회이니까 개인 복음전도자로 평생을 살겠습니다.
△해외 한인을 대상으로 목회하면서 어떤 점을 느꼈습니까.
▲사도행전 6장을 보면 당시 초대교회 신자의 대다수가 히브리파 유대인인데도 헬라파 유대인 7명이 안수집사로 선정됩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자기네와 같은 사람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각하는 반면, 외국에서 살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은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이들에 의해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지요. 해외에 나와서 사도행전을 읽고 보니 해외교회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의 문제는 나와 다른 것은 융화하지 못하는 것인데 해외한인들은 고향을 떠나 나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므로 나와 다름을 용납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불행히도 이민교회는 몸은 헬라파인데, 마음은 헬라파가 되지 못해 자꾸 분열되곤 합니다. 해외한인교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서 건강하고 성숙해짐으로써 그 모델이 역으로 한국으로 들어가 한국교회가 새로와지길 바랍니다.
△지난 몇년간 미주에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이곳 기독교인들의 변화나 달라진 추세를 봅니까.
▲직접 몸담고 있지 않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듣거나 이곳 성도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보면 이민교회가 융화되기보다는 자꾸 분열되는 모습을 보게 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요 근자에 와서는 남가주에 예배당 건축붐이 일고 있는데 예배당도 필요하지만 교인이 많아서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짓는 것과 지어놓으면 교인이 오리라고 믿고 짓는 것은 다르지요.
△말씀하신 대로 교회들은 예배당을 짓고, 더 크게 개조하고, 또 교육관을 짓고, 건축만 하는 느낌을 줍니다. 주님의교회는 건축헌금을 따로 하지 않고도 정신여고 강당을 지어준 아름다운 선례로 지금까지 회자되는데 어떤 방법으로 시행됐는지요.
▲교회건축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지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본질의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 16세기 종교개혁을 봐야하지요. 가톨릭의 계급시스템에 반기를 든 종교개혁을 북유럽에서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였고, 장로교를 포함한 개신교회는 교인을 대표한 장로들의 대의정치라는 ‘시스템’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한국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교회는 시스템이 아니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라는 공간이 중요하고 건축이 중요해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건축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교회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본질로 회귀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복되면 건축 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만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답을 내어도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미주교포사회에는 크리스천 인구가 많습니다. 70%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고, 목사와 교회도 갈수록 많아지는데 그 때문에 사회가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이 심합니다.
▲고등종교가 타락할 때 보이는 첫 번째 현상이 성직자의 급증입니다. 불교가 번성했을 때 고려 천지가 스님들로 넘쳐났던 것이나, 가톨릭이 타락했을 때 온 유럽에 신부지망생이 줄을 이었던 것을 역사가 증명합니다. 고등종교와 하등종교의 차이는 신 앞에서 ‘자기 부인’이 있는가 하는 점인데 고등종교의 타락은 자기 부인을 상실했다는 것이고 성직은 굉장히 좋은 직업이 됐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직자가 유례없이 많다는 것은 목회자 뿐 아니라 교인도 똑같이 자기부인을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70%의 교인은 있지만 정말 진리와 말씀 앞에서 자기부인하는 성도가 얼마나 있는가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현상은 성직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세우는 신학교, 연구소, 교회등종교기관의 급증입니다. 세 번째는 신앙의 기복화입니다. 종교기관들이 서로 경쟁자가 되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본래의 메시지보다 성도들이 듣기 좋은 기복신앙을 강조하게 되는거죠. 따라서 타락한 종교 뒤에는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는 교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문제는 바로 나, 개인 각 사람의 문제입니다.
△요즘 한국이나 이곳 교계에서 종교간의 대화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대두됩니다. 개신교와 크리스천은 유난히 배타적이지 않습니까?
▲내것이 중요하면 상대의 것도 중요합니다. 상대와 대화하지 않고, 상대를 알지 못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은 있을 수 없지요. 신학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성부 하나님을 정점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신론이라고 하고, 성자 예수님을 제일 위에 두는 것을 기독론이라고 합니다. 이 삼각형의 정점을 “예수 외에 구원 없다”는 기독론에 두면 종교간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꼭지점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 신론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창조주 하나님 아래서는 다른 종교도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유대인에게는 여호와이지만, 이슬람에게는 알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갖고 있으면서, 다른 종교인에게도 그와 같은 신앙고백이 있을 수 있음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목사님의 개인생활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가정을 소개해주시죠.
▲아내(정애주)가 홍성사를 운영하고 있고 아들이 넷 있습니다. 고3, 고1, 중1,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고 있지요. 제가 3년동안 스위스에 떠나 있었고, 지금도 집회 다니느라 집을 많이 비워서 미안한데 밝고 건강하게 자라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어느 교회에 다닙니까.
▲산울교회라고, 우리 여섯식구를 포함해 40명 정도 출석하는 작은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장신대 2년 선배이고 숭실대 국문과 교수인 조성기 전도사가 담임하는 교회인데 저는 고등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지요.
△미주교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저는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한인 크리스천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습니다. 세계 어느 민족 중에서도 한인들처럼 해외에서 어렵게 살면서 하나님을 잘 믿어보려고 열심인 민족이 없습니다. 그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잘 통합되어서 아름다운 삶으로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인들은 미국땅에서 잘 살기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살기 때문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와 영향를 미치는 가를 생각하며 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재철 목사는 39세에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어 ‘주님의교회’를 통해 본질을 회복한 교회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목회 초기에 스스로 정한 10년의 임기에 따라 1998년 6월 주님의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임했으며 그해 9월부터 스위스의 제네바한인교회에서 가족과 떨어져 3년간 목회한 후 지난 해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현재는 집회와 집필로 전세계 크리스천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다. ‘믿음의 글들’ 시리즈를 내는 주식회사 홍성사의 발행인이며 저서로는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 ‘새신자반’ ‘회복의 목회’ ‘회복의 신앙’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참으로 신실하게’ 외에 여러권의 설교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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