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러나 제일은 ‘사랑’

2002-05-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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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Les Destinees)
★★★★

거센 물살처럼 빠르게 흐르면서 그 자태를 수시로 바꾸는 세월의 거대한 무게 앞에서도 변치 않는 부부애를 그린 대하 서사 드라마다. 프랑솨 미테랑이 가장 좋아했다는 프랑스 소설가 자크 샤돈의 작품을 통찰력 있는 예술감각을 지닌 올리비에 아세야 감독(여배우 장만옥의 남편)이 질펀하면서도 근접하니 친밀하게 영상화한 풍성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2000년작으로 프랑스어 대사에 영어 자막.

상영시간 3시간짜리 대작으로 고전 문학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이들 문학작품에서처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성격 개발과 대사를 비롯해 잘 짜여진 구조 등이 모두 좋다. 일종의 시대극으로 수십년간에 걸친 사회환경과 인간관계의 변화를 다룬 것이 루키노 비스콘티의 ‘표범’이나 베르톨루치의 ‘1900’을 연상케 한다.
프랑스 샤랑트의 한 작은 마을 목사 장(샤를르 베를링)은 남편의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차가운 아내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와의 사이에 어린 딸까지 두었으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붕괴 직전에 있다. 장은 이럴 때 한 무도회(어지럽도록 화려하다)에서 눈이 크고 탐스런 입술을 가진 폴린(에마뉴엘 베아르)을 만나는데 뒤에 폴린은 장의 영원한 반려자가 된다.


장은 나탈리와 이혼하고 목사직마저 사임한 뒤 마을을 떠나 새 삶을 찾기로 한다. 장이 폴린을 다시 만나는 것은 장이 폐병에 걸렸을 때. 둘은 서로가 사랑으로 맺어진 하나임을 인지하고 결혼해 스위스의 산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행복한 생활을 하면서 아들까지 낳는다. 그러나 장이 가업인 도자기 제조업을 위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면서 장과 폴린의 파란만장한 삶이 제2막을 맞게 된다.

제1차 대전과 나치의 프랑스 침공에 이르기까지 수십년간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관계의 형성과 분리 그리고 구세대의 붕괴와 현대의 도래를 차분하면서도 정감 따스하니 얘기한 드라마다. 코냑과 도자기 제조업이 세월의 변화와 산업의 세계화에 따라 부침하는 과정을 통해 시장문제와 노사문제까지 다루고 있고 폭넓게는 소용돌이치는 경제와 사회 및 정치문제를 취급했다.

작품의 핵심은 이 같은 변화하는 시간이 부부관계와 사랑에 미치는 영향인데 감독은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데 특히 베아르의 연기가 돋보인다. 성인용. Winstar. 파인아츠(310-652-1330), 플레이하우스7(626-844-6500), 타운센터5(818-981-9811), 빌리지3(714-540-0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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