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람피는 아내에 대한 경고장

2002-05-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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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 ‘부정’(Unfaithful)★★½

남녀간의 어두운 성적 욕망과 기혼자의 부정 그리고 이것들의 후유증을 깊이가 있다기보다는 야하게 다루는 에이드리안 라인 감독(’9½주’ ‘점잖지 못한 제의’)의 또 다른 에로틱한 드라마다. 라인은 ‘치명적 매력’에서는 바람 피는 남편에 대해 호된 경고를 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바람 피는 아내에 대해 경고장을 보낸다.

라인은 부족함이 없는 가정주부의 걷잡을 수 없는 외도를 그리면서 그 여인과 남편 등 주변사람이 갖게 되는 갈등과 고뇌를 탐지한 흔적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심리적인 묘사는 약한 반면 자극적이요 에로틱한 섹스 영화로 말초신경을 꽤나 자극시키고 있다.

프랑스 뉴웨이브 출신으로 심리 스릴러에 능숙한 클로드 샤브롤의 ‘부정한 아내’(1968)가 원작. 라인 감독은 자기 영화를 ‘죄의식의 육체언어’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표현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멋만 잔득 부리고 내용은 부실한 외도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야한 재미는 있지만 대사가 유치하고 각본이 이류여서 마음에 깊이 어필하지 못한다.


성공한 사업가 에드워드(리처드 기어)와 카니(다이앤 레인)는 뉴욕 교외의 대저택에서 8세난 똑똑한 아들과 개와 함께 남부러울 게 없이 사는 중년 부부. 그런데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 바람이 카니의 바람을 상징하는가) 카니가 뉴욕에 나갔다 바람에 밀려 소호에서 젊고 신체 건강한 미남 폴(올리비에 마티네스-프랑스 배우로 ‘지붕 위의 기사’ 주연)과 정면 충돌하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한때 권투선수였다는 폴은 프랑스 사람으로 희귀서를 수집해 파는 청년. 자기를 너무 의식하는 바람둥이이나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수염은 왜 안 깎는지 모르겠다)으로 카니는 그의 스며 나오는 섹스어필에 자기도 모르게 끌려든다. 불란서 것 좋아하는 유로트래쉬의 표본감.

그 다음부터 카니는 남편을 속이고 매일 같이 폴의 로프트를 찾아 섹스의 희열에 잠긴다. 바람 피는 데는 이유가 없는 법이어서 카니는 죄의식에 시달리면서도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처럼 폴과의 섹스에 탐닉한다. 아내의 행동을 수상히 여기게 된 에드워드는 사설탐정을 시켜 아내의 행적을 정탐케 해 카니의 불륜행위를 알고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폴을 찾아가면서 에로틱한 드라마는 스릴러로 변한다(드라마에서 스릴러에로의 변이가 어색하다).

카니와 폴간의 관계와 감정 교차에 관한 묘사는 전무하다시피 해 제대로 드라마가 구축되지 못했다. 둘은 식당 화장실, 극장, 로프트 복도 등에서 시도 때도 없이 온갖 형태의 섹스를 하는데(촬영은 착 가라앉은 푸르스름한 단색이고 음악은 무드를 돋운다) ‘유부녀 바람났네’의 심리탐구 영화로서는 실패했다.

다이앤 레인이 젖가슴, 배와 배꼽, 그리고 넓적 다리를 노출시키고 열연을 하는 레인의 영화로 내용이 그녀의 연기를 못 따른다. 마티네즈의 연기는 몹시 어색하다. 인물들의 성격 개발도 매우 약하다. R. Fox. 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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