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볕 쏟아진 산속 ‘행복캐기’

2002-05-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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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버나디노 국립공원 고사리 채취 나들이

참 유난스럽다. 한국에서도 하지 않던 고사리 캐기를 왜 태평양 건너 와 새삼스레 하려는 걸까. 봄이면 볕 좋은 뒷산과 들판에서 달래, 냉이, 쑥을 캐던 추억이 그리운 때문인 듯하다. 우리들의 봄은 고사리 캐기와 함께 다가온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샌버나디노 국립산림협회가 고사리 채취 허가증을 발행하기 시작한 지난 주말 김창길(44·무역업)씨는 아내 인실씨(43), 그리고 두 딸 선아(15), 선경(10)과 함께 샌버나디노 국립공원을 찾았다. LA에서부터 약 1시간30분쯤 운전을 했나. 대관령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에로헤드 레인저 스테이션 사무실(The Arrowhead Ranger Station Office)에 도착을 했다.

"고사리 캐러 오셨죠?"(Are you here for collecting Gosari?) 소문이 아니었다. 비닐 봉지를 들고 와 고사리를 캐 가는 한인들의 유난스러움이 미국인 레인저들로 하여금 ‘고사리’라는 한국어를 알아듣게 만들었다는 것 말이다. 한국어로 된 안내문을 건네주는 레인저는 "오늘부터 허가증 발행을 시작해서 아직 고사리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며 본래는 일인당 10달러인 허가증을 가족 당 10달러에 마련해 주는 후한 인심을 베풀기도 했다.


허가증을 받은 김창길씨 가족은 레인저 스테이션 바로 길 건너편에 펼쳐진 스위처팍 고사리 채취구간(Switzer Park Fern Picking Area)으로 발길을 옮겨 놓는다. 고사리가 많이 발견되는 곳은 오래된 떡갈나무 주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지역. 커다란 떡갈나무 그늘 아래를 살펴보면 이미 성장한 고사리들이 이파리를 드리우고 있는데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기 고사리 역시 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얼마 가지 않아 어린 고사리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김창길씨.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가 그렇게 기쁨에 찰까 싶은 큰 목소리로 두 딸을 부른다. "선아야, 선경아! 아빠, 찾았다!" "어디, 어디." 쪼르르 달려온 두 딸에게 김창길씨는 자기 손으로 따 더욱 귀한 고사리를 보여준다. 이렇게 어린 싹을 찾는 거고 이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따지 말라는 주의사항과 함께.

선아와 선경이는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기분으로 풀숲에 숨어 있는 고사리를 찾는다. "나도 찾았어!" 10여 분만에 처음으로 고사리를 발견한 선경이는 우쭐함에 엄마를 불러 고사리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잘 안 보이더니 하나를 찾으니까 다 따가지 못할 만큼 많은 고사리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된다.

가족 모두가 봄기운이 완연한 산에 올라 신선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팍이 행복으로 가득 찬 주말 오후. 새들의 영롱한 노랫소리를 들었지, 곳곳에 피어있는 색깔 고운 야생화도 눈에 실컷 들여놓은 데다가 덤으로 저녁 반찬거리까지 챙겨가니 뭘 더 바랄까. 선아와 선경이 어렸을 적 작은 손을 무척 닮은 고사리들. 흙을 밟아볼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던 두 딸들도 오늘 들판에서 맡았던 숲의 향기를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것 같다.

"고사리도 꺾을 때 꺾는다"고 했다. 모든 일에 적절한 시기가 있으니 그 때를 놓치지 말라는 뜻으로 우리 조상들이 쓰던 표현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이 봄 고사리 꺾듯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 걸까.


고사리 따러 가는 길

LA에서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215번 North, 30번 East로 갈아타고 Waterman Ave. 출구에서 내려 좌회전한 후 북쪽으로 쭉 올라간다. Waterman Ave.가 하이웨이 18번으로 바뀌고 중간에 여러 길이 나오지만 하이웨이 18번만 곧장 따라 올라간다. 하이웨이 173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0.25마일 더 하이웨이 18번을 따라가다가 샌버나디노 국립 산림 에로헤드 레인저 스테이션(San Bernardino National Forest Arrowhead Ranger Station Office: 28104 Highway 18)이 나오면 좌회전한다. 거리는 약 100마일이지만 산길이 꼬불꼬불해 여유 있게 시간 계산을 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고사리 채취에 관한 자세한 문의는 에로헤드 레인저 스테이션 (909)337-2444로 하면 된다.



레이크 에로헤드 가는 길목에 있는 에로헤드 레인저 스테이션 사무실(The Arrowhead Ranger Station Office) 주변에는 알리슨 렌치, 산타스 빌리지, 스위처팍, 크레스트팍, 시카모아 등 모두 다섯 군데의 채취 장소가 있다. 자연 보호와 관리상의 이유로 이곳 5군데의 지정 지역에서만 고사리 채취가 허가된다.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허가증(permit)이 꼭 필요하다. 허가증은 일인당 10달러로 레인저 스테이션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그리고 주말에는 오후 2시30분까지 구입할 수 있다. 허가증은 당일에 한해 판매되며 하루동안만 유효하다. 구입한 허가증은 차 유리창에 보이도록 붙여두면 된다. 허가증 없이 고사리를 따는 것은 주정부 법에 저촉되는 행위로 벌금과 구속처분을 받게 된다. 고사리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딸 수 있고 6월 중순께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고사리를 따려면 가위나 칼, 손을 보호하기 위한 장갑, 그리고 캐낸 고사리를 담을 수 있는 비닐 백이나 가방이 필요하다. 레인저 스테이션에서는 노란색 비닐 봉투를 10센트에 판매하고 있지만 가져간 봉투를 이용해도 된다.

산의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맑았던 하늘에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다가오고 안개가 끼기도 한다. 지난해에 고사리를 따러 갔다가 실종됐던 모녀의 이야기를 교훈 삼아 절대 무리를 이탈하지 말고 트레일을 따라 다녀야 할 것이며 무전기를 준비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고사리 채취 장소에서의 포터블 바비큐는 금지돼 있으며 지정된 지역 외의 캠프파이어는 불법이다. 고사리 채취 허가증으로는 고사리밖에 딸 수 없다. 다른 나무나 산림자원을 캐거나 훼손하는 일은 법에 위반된다. 고사리가 많이 발견되는 주변에는 뱀도 흔히 발견되는데 뱀을 포함한 야생 동물을 해치는 것 역시 불법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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