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라티노 껴안은 ‘신바람 문화체험’

2002-05-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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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민족을 이해하는데 가장 빠른 지름길은 그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일이다. 외국인들이 흔히 한국의 음식문화와 전통공연등을 접하고는 급속히 친밀감을 느끼게 되듯 말이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갈등의 배출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의미할 터이다.

LA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엮이게 되는 히스패닉 공동체. 대개 우리는 고용주, 그들은 직원의 위치다 보니 월급은 물론 밥 한 끼라도 항상 사주는 위치에 있게 된다. 미아 장(38·보험사 대표)씨 역시 직원인 에스터 고메즈(Esther Gomez·29)에게 갈비도 많이 사줬고 노래방도 수없이 데려갔었다.

"언니, 우리 브로드웨이 축제에 가요, 크리스티나도 데리고." 10년 간 한국인 밑에서 일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한국어 이해는 물론이고 간단한 표현도 할 수 있게 된 에스터는 미아 장 씨를 언니라고 부른다. 항상 베풀기만 하는 그녀에게 자기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싶어서였는지 초대한 축제. 딸 크리스티나(12), 그리고 에스터의 쌍둥이 조카인 니콜, 캐터린(7)까지 대동하고 다운타운으로 향한 지난 주말, 히스패닉 공동체는 한 걸음 가깝게 그녀에게 다가왔다.


벌써 13년째 계속된 브로드웨이 축제(Fiesta Broadway LA)는 이번 주말 곳곳에서 열리는 싱코 데 마요의 전야제 격인 행사로 매년 4월말 다운타운의 36개 블록에 수십만 인파가 몰려드는 이벤트이다.
주차장까지 꿍꽝거리는 밴드 소리가 들려와 한껏 분위기를 잡아주니 차를 내리기도 전에 신나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11가와 브로드웨이 코너, 축제가 시작되는 지점에 들어서자마자 행사 스폰서들이 또띠야 칩에 살사 소스 시식 접시를 내민다.

메인 스테이지 위에는 챙 넓은 모자와 유니폼을 멋지게 입은 마리아치들이 그리 귀에 설지 않은 멜로디들을 연주하고 있다. 살사의 여왕이라는 셀리아 크루즈와 여성 록스타 알레한드라 구즈만 등 멕시코에서 인기 깨나 있다는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라이브무대 앞. 히스패닉 공동체 안에서는 서태지 정도로 유명하다는 크리스티안 카스트로 (Christian Castro)가 ‘아줄, 아줄(Azul Azul)’이라는 곡을 열창하자 광장을 빼곡 메운 관중들이 일제히 열광한다.

브리도, 타말레 등 멕시코의 먹거리들을 팔고 있는 음식 부스 앞에 다다르자 평소 갈비 많이 사준 미아 장씨에게 한 턱 낸다며 에스터가 타코를 사준다. 또띠야에 싸먹는 타코를 대할 때마다 미아 씨는 꼭 상추에 싼 고기를 먹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먹거리의 유사성 역시 한인과 히스패닉 공동체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 같다.

멕시코의 전통 의상으로 단장한 두 쌍둥이의 귀여운 모습과 머리에 빨간 꽃까지 꽂은 에스터는 길가는 사람들을 모두 멈춰 서게 할만큼 온통 시선을 차지하기도 했다. 히스패닉 라디오인 AM 1313 KWKW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3시에 방송되는 ‘La Hora de Global’의 진행자이기도 한 에스터를 미아 장 씨가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 미국 보험 회사에서 일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사장이었던 미아 씨가 취직 시험을 보러 온 에스터를 면접하게 된 것. 그후 미아 씨가 독립해 회사를 설립했을 때도 에스터는 한결같은 힘이 돼주었다.

지난 10년 동안 미아 씨와 에스터는 아이들을 서로 봐주기도 하고 주말이면 바비큐 파티도 함께 하며 직장 보스와 직원이라기보다는 친구처럼, 자매처럼 삶을 함께 해왔다. 에스터가 한국식 노래방에 초대돼 가는 기회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가끔씩은 미아 씨도 에스터의 안내로 살사 클럽을 찾아가 꿍짝거리는 음악에 몸을 맞기며 친구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도 한다.

글 박지윤 객원기자 사진 이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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