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밉지않은 ‘LA 욕하기’

2002-05-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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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 엔딩’
(Hollywood Ending)
★★★★

신경과민의 갈비씨로 재잘대고 칭얼대면서 관객의 연민을 구하는 뉴요커 코미디언 우디 앨런이 쓰고 감독하고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로 시종일관 깔깔대며 즐겼다.

늙어 가는 앨런 자신에 대한 자화상이자 풍자극이요 영화 속 영화라는 구성을 통해 할리웃 영화계(예술성과 상업성의 대결과 뱀장어처럼 미끈미끈한 에이전트)와 LA(태양과 성형수술과 진흙사태)를 싸잡아 조롱하고 있다. "저 친구 또 LA 욕하네" 하면서도 독하면서도 귀엽게시리 재치 있게 꼬집어대는 내용이 사실이어서 밉지가 않다.


시간대는 현재이나 영화 속 영화 내용이 40년대 갱스터 얘기인데다 빅밴드 음악이 나오고 또 슬랩스틱 코미디 스타일어서 노스탤지어 분위기가 가득하다. 신랄하고 똑똑하고 위트 있는 대사와 훌륭한 연기 그리고 영화판 돌아가는 모양을 상세히 보여주면서 아울러 사랑 타령이 심해 보통 재미있는 게 아니다.

오스카상을 두개나 탔으나 이제는 나이가 먹은 데다 까다로운 예술지상주의자여서 아무도 원치 않는 영화 감독 발(우디 앨런)에게 컴백의 기회가 찾아온다. 문제는 그에게 40년대 갱스터 얘기 ‘잠들지 않는 도시’의 연출을 부탁한 사람이 자기를 버리고 억만장자 할리웃 스튜디오 사장 할(트릿 윌리엄스)에게 간 전처로 제작자인 엘리(테아 레오니)라는 사실.

머리가 빈 젊은 배우 지망생 로리(데브라 메싱)와 동거하면서도 아직도 엘리를 사랑하는 발은 처음에는 연출을 맡으라는 에이전트 알(마크 라이델-’황금호수 위에서’ 감독)의 간언에 반발하다가 결국 연출을 맡는다. 광고필름이나 찍는 신세에 메이저의 대작을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인데다 엘리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신경이 지나치게 과민한 발이 그만 영화촬영 시작 이틀을 앞두고 스트레스 때문에(스트레스 원인을 발과 그가 오랫동안 등한시 해온 하드록 연주자인 아들과의 긴장된 관계에 돌린 것은 사족 같은 짓) 눈이 멀면서 온갖 터무니없고 요절복통할 일들이 벌어진다. 이 실명 에피소드에서 실제로 히포콘드리액인 앨런은 실명이 뇌종양 때문이라며 호들갑을 떨고있다.

발은 자신의 실명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알의 아이디어로 중국인 촬영 감독의 통역자인 NYU 비즈니스 전공 학생을 매수, 그의 안내에 따라 연출을 하는데 장님이 영화를 만드니 (본인은 베토벤도 귀 먹은 뒤 작곡했다며 큰 소리 치나) 그 결과는 보나마나 뻔한 일. 완성된 영화는 미국서는 혹평을 받지만 발을 신처럼 여기는 프랑스에서 격찬을 받으며 다시 시력을 회복한 발은 베레모를 쓰고 자기에게 되돌아온 엘리와 함께 파리로 떠난다. ‘비브 라 프랑스!’. 이 영화는 곧 열리는 칸 영화제에 출품됐다.

발의 눈을 멀게 한 것은 영화제작의 무분별성과 함께 사랑의 맹목성을 상징하나 다소 황당무계하다. 그리고 엘리가 발에게 되돌아오는 감정의 퇴로도 제대로 그려지진 못했다.

앨런을 비롯해 레오니와 메싱 그리고 라이델 등의 연기가 뛰어난데(그런데 조지 해밀턴은 별 쓸모도 없는데 왜 나와서 맹장노릇을 하는 것일까) 최근 앨런의 영화 중에서 가장 잘 만들었다. PG-13. DreamWorks. 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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