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완전한 삶에서 건져 올린 축복들

2002-05-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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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멸의 아름다움

필립 시먼스 지음
나무심는사람 펴냄

불교의 경전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죽을병이 아니라면 질병을 지니고 사는 것은 축복이다. 그만큼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꼭 건강함만이 축복은 아니라는 깊은 교훈이 담겨 있다.

그러나 죽음으로 점차 다가서는 질병속에서도 이런 축복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미국작가 필립 시먼스가 쓴 ‘소멸의 아름다움’은 이런 질문에 대답을 제공한다. 그의 대답은 책의 부제속에 잘 드러난다. ‘불완전한 삶의 축복들(The Blessings of an Imperfect Life)’. 말라 죽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처럼 불완전한 삶에서도 축복은 떨어진다고 시먼스는 말한다.


35살이던 지난 93년 루게릭병으로 고작 5년을 살수 있으리라는 진단을 받은 저자는 죽음과 함께 사는 삶속에서 인생을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 책속에서 그가 ‘죽어가는 기술(art of dying)’과 모든 것을 담담히 잃을줄 아는 ‘낙법 배우기(learning to fall)’를 통해 깨달은 것들을 적어 나가고 있다.

"삶이란 어차피 죽음을 앞둔 상태다. 죽음을 면할수 없는 운명을 좀더 충분히 자각하는 것이야 말로 좀더 충실한 삶으로 나를 이끄는 최고의 안내자였던 셈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시한부 인생을 시작하게 되면서 ‘완전한 삶’이 아닌 ‘충만한 삶’을 추구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나는 병에 걸린 덕분에 나의 행동을 신성한 맥락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어제 했던 일도 오늘은 갑자기 성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진다.

수건으로 아이 얼굴을 닦아 주는 일도 어제는 다음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치워야 할 귀찮은 허드렛일이었지만 이제는 이 일이 신비로운 의식에 참여하는 일로 여겨진다. 그런식으로 누군가와 내 삶을 나누어 갖는 것은 얼마나 멋진 기회인가."

그는 완전했을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불완전한 삶속에서는 축복으로 승화되는 체험을 했다고 밝힌다. 저자인 시먼스보다는 나은 환경을 가졌을 우리들 또한 이런 고백이 가능하지 않을까.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다면 말이다.

역자는 후기를 통해 22살 때 역시 루게릭병으로 몇 년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 받고도 최근 환갑을 맞은 물리학계의 거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시한부 인생의 선고 받았을 때 했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내병에 대한 진단을 받기 전에는 사는 것이 따분했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의미있고 가치있는 나날이 될테니 이 얼마나 행복한 노릇인가."

당신이 충만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당신이 가진 날, 가진 재물이 너무 많아서 일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시먼스는 휴지 한 장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지만 시한부 삶을 시작한지 8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호흡을 계속하고 있다. 호킹박사 역시 그후 38년 이상을 생존해 있다. 이래저래 두사람은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조윤성 기자>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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