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골든 이글에서의 밤’(Night at the Golden Eagle)

2002-04-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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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적물 같은 인간들의 처소인 LA 다운타운 스키드로우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고색 창연한 호텔을 무대로 벌어지는 늙어 가는 두 범죄자들의 마지막 자기 구원을 위한 몸부림을 그린 묽은 필름 느와르요 블랙 코미디다.

산산이 조각난 꿈과 우정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새 출발의 두 주인공은 중년 말기의 친구 타미(다니 몬테마라모)와 믹(비니 아지로). 믹이 LA의 뜨거운 여름 7년간의 옥살이 끝에 출감하는 타미를 맞으면서 시작되는 하룻밤의 얘기가 날씨의 열기를 타고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일으킨다.

타미를 자기가 사는 지저분한 골든 이글 호텔로 데려온 믹이 타미에게 그동안 번 돈을 가지고 둘이 함께 베이가스로 가 블랙잭 딜러를 하며 편안히 살자고 제의, 두 친구는 새 인생에 대한 꿈에 부푼다. 그러나 믹이 LA에서의 마지막 직장 출근(포르노 가게 청소원)을 한 사이 타미가 방으로 불러들인 창녀(나타샤 리온)를 뜻하지 않게 살해하면서 두 친구간에 긴장감과 대결의식이 끓어오른다.


타미와 믹은 사체 제거작업에 실패하면서 격렬한 말다툼을 벌이고 그 끝에 타미는 이번에는 믹을 살해한다. 하룻밤 새 수십년간의 우정과 새 삶에의 꿈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어둡고 처절한데 에어컨도 없는 싸구려 호텔 내서 일어나는 사건과 드라마여서 내장까지 더운 기운으로 끈적거린다.

창녀와 마약, 빈곤과 범죄, 쓰레기와 핌프로 얼룩진 동네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한 부식되고 어두운 컬러 화면이 인상적이다. 인물들만큼 호텔이 개성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 호텔은 멋진 옛날 식의 정장을 한 늙은이 같은 생명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예산 영화치고는 연기들이 뛰어나다. 몬테마라노(실제 공갈협박 전과자)와 아지로는 60년 이상 브루클린의 같은 거리에 살았던 실제 친구로 연기 경력도 거의 없는 사람들. 그런데 둘이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보여주는 연기가 베테런급이다.

영화에는 또 전설적인 탭댄서 형제인 니콜라스 형제의 형인 페이야드 니콜라스와 그래미상을 받은 나이 먹은 소울가수 샘 무어 등이 호텔 투숙객으로 출연해 사실적인 연기를 한다. 두 친구의 얘기의 서브 플롯인 창녀들로 나오는 나타샤 리온, 앤 매그너슨 그리고 핌프역의 비니 존스 등의 연기도 좋다. 독특한 흥미를 유발하는 영화다. 애담 리프킨 감독(각본). 성인용. 5월2일까지 뉴아트(310-478-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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