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년에 배운 색서폰으로 가족음악회

2002-04-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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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람의 주말나기

마일즈 데이비스의 색소폰 선율이 울려 퍼지는 노을진 바닷가, 소니 롤린스의 연주가 감싸 안은 도시의 밤. 온 몸 세포의 문을 열어 주는 것이 어디 붉은 빛깔의 와인뿐일까. 끈적끈적하게 온 몸을 휘감아오는 듯한 색소폰의 낮은 음색은 때로 앙리 마티스의 그림 속 여인들보다 더한 관능으로 잠들어 있던 감각들을 일깨운다.

하용철(43·여행사 이사)씨가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약 8개월 전의 일이다. 방송국 경음악단으로 취직할 것도 아닌 그가 왜 중년의 나이에 색소폰을 시작하게 된 걸까.

브라스 밴드에서 색소폰을 부르던 친구의 멋진 모습은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그의 마음을 온통 차지해 버렸다. 친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진짜 색소폰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당시만 하더라도 노래며 악기 연주는 딴따라나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부친은 완강하게 반대를 했다.


오랜 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색소폰 연주에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악기 구입. 빛을 받으면 휘황찬란하게 반짝거리는 색소폰은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가 구입한 것은 시가 1,000달러 정도의 야마하 알토 색소폰. 7가지나 되는 색소폰의 음역 가운데 가장 음색이 부드럽고 무게가 있어 알토로 결정했다.

예전에 기타를 쳤고 악보도 잘 읽어서인지 다른 사람들보다 진도가 빠르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배운 지 3개월이 됐을 때 ‘하얀 나비’를 연주할 수 있었으니까. 레슨은 일주일에 한 번 받지만 연습은 매일 한다. 1시간 30분-2시간 가량 연습을 하고 나면 머리가 띵해질 정도라고. 색소폰을 더 잘 연주하기 위해 다른 목관 악기와 금관 악기 연주 음반을 찾아 듣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솔로 연주도 좋지만 함께 만들어 내는 하모니에 비할까.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그룹과 함께 소리를 가꾸어 가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 그는 요즘 밴드 입단을 위해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다. 이 나이에 돈도 생기지 않는 밴드에 들어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가 음악으로 그들의 영혼을 달래는 선물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가 색소폰을 연주하고부터 피아노를 잘 치는 아내, 자녀들과 함께 가족 음악회를 여는 일이 잦아졌다. 양 볼이 터질 듯 바람을 불어넣으며 서머타임, 베사메무초, 장욱조의 ‘고목’을 연주할 때면 세상에 부러울 게 아무 것도 없어진다.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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