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더불어사는 행함 더중요”

2002-04-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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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참사 때문에
미국이나 미주한인들의 상태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잘 극복해 나가는 것을 보고
역시 미국의 힘과 질서를 실감했습니다.
1백만의 한인들이 움을 틀고 있는 미국이라서
한국에 있으면서도 항상 관심을 갖고 있어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총무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송월주 큰 스님(68. 금산사, 영화사 회주)이
오랜만에 LA 한인사회를 찾았다.

총무원장이 되기 이전과 총무원장 시절, 또 이후에도 우리민족서로돕기 본부, 경실련. 민족정기원양협의회 공동대표등을 맡으면서 ‘불교의 사회참여’‘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자비행 캠페인’등을 적극 추진해 온 ‘거목’이지만 뜻밖에 자그마한 체구였다. 그러나 눈빛만은 아직 청년같이 빛났다.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말소리에도 묵직한 힘이 실려 있다.

지난 주말 서울 국제공원앞에 위치한 반야사(주지 현철스님)에 도착한 월주 큰스님은 20년만에 다시 돌아온 곳에서 한달동안 한인불자들을 만날 계획에 부풀어 있다. 먼저 반야사에서 14일 오전 11시 특별법회를 인도한 후 관음사와 샌디에고 연화사, 하와이 무량사등지에서의 일정이 잡혀있다. 또 남가주사원연합회(회장 도안스님)가 주관하는 초파일 합동법회(5월5일)에서 설법을 할 예정이다.


반야사는 월주스님에게는 제 2의 고향같은 곳이다. 전두환 신군부 만들기에 협력하지 않았다며 종단에 철퇴를 가한 80년 ‘법란’의 피해자로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월주 큰스님은 취임 6개월만에 직위해제되고 말았다. 27일간 옥고를 치른 후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신군부는 2년간 공직취임을 못하게 했고 스님은 자의반,타의반으로 미국에 왔다.

“손발이 꽁꽁 묶힌 시기였던 82년부터 85년까지 3년동안 거주했던 반야사(당시 주지 석지명스님)이니 고향같을 밖에요. 특히 그 기간에 미주전역을 돌며 전국의 불자들과 만나고 견문을 넓힐 수 있었으니 아주 좋은 인연이지요”

월주 큰스님은 불교종단의 법통과 자주권을 지키고 불교어용화를 방지했다는 불교계 여론에 힘입어 94년 다시 총무원장에 선출됐다. 4년간의 총무원장 시절에 그는 특히 내부로 향해있던 불교계의 눈을 바깥으로도 돌리게 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특히 어린이나 노인, 불우이웃을 돕는 복지사업에 역점을 뒀다. 재임기간 불교아동복지기관수가 10배로 늘었고 불교유치원이나 도서관, 어린이집, 청소년센터, 노인복지시설을 무려 200여군데를 개설한 것이 한예다. 그뿐 아니라 ‘우리민족서로돕기 본부’의 공동대표로 굶는 북한주민 식량기금으로 96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300억원을 모금하는데 앞장섰다.

특히 북한주민 돕기에는 총무원장에서 물러난 98년 이후 더욱 적극적이 됐다. 지난해 두차례에 이어 올해 1월초에도 기독교대표들과 함께 평양에 다녀왔다.
“미주 한인불자들에게 이번에 강조할 것도 역시 보살행입니다. 참선과 염불, 경읽기를 통해 마음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덜어주는 행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같은 맥락으로 북한동포와 고통받은 인류를 돕는 생각를 일으키고 실천하자는 것이지요”
송월주 큰스님은 1956년 금오대선사를 스승으로 법주사에서 출가했다. 문의 반야사 (213)382-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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