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좋은영화 함께 보기

2002-04-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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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주말모임

"일요일 저녁 그곳에 가면 보석같은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과연 그런 곳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에게 ‘시네벤치(Cine Bench)’ 관계자들은 말한다. 자신들의 모임에 오면 ‘좋은’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다고.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과의 정겨운 대화로 잊혀졌던 감성이 되살아나는 경험도 할 수 있다고.

시네벤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참여 할 수 있는 열린 영화공간이다. 누구라도 앉을 수 있고 잠시 앉아 있는 동안 사색과 휴식을 할 수 있는 공원의 벤치처럼 운영자들은 시네벤치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과 생활의 여유를 담아가길 소망한다.

1999년 1월 하나 크리스천 센터의 문화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시네벤치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이기성(37·영화감독)씨는 왜 돈도 생기지 않는 일에 그토록 열심이냐는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답한다. "좋은 영화 함께 보면 좋잖아요?" 어디 그뿐일까. 작은 다과 준비에서부터 프로그램 제작, 웹사이트 운영에 이르기까지 영화사랑 하나로 일관한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시네벤치는 오늘도 지나가는 이들에게 여유 있는 빈자리를 내줄 수 있는 것이다.

3년이라는 세월을 지내오면서 32인치 TV 모니터는 대형 프로젝터로 바뀌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거의 매주 영화 상영을 해오다 보니 이제 시네벤치의 시사회를 통해 소개한 영화 수가 제법 된다. 200여 편의 영화 가운데 아직도 회원들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영화로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천국의 색깔 (Color of Paradise)’, ‘박하사탕’ 등을 꼽힌다.


지난주 일요일 오후 함께 본 영화는 문승욱 감독의 ‘나비’. 망각하고 싶은 기억과 화해에 관한 빼어난 수작이었다. 서울 개봉관에서도 일주일만에 간판을 내렸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시네벤치의 시사회가 아니었더라면 영 모르고 지나갈 뻔한 영화였다.

헐리웃 스타일에 젖어 있는 일반인들에게 시네벤치 시사회를 통해 접하는 유럽, 동남아, 중동 등 전세계의 다양한 영화는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무슨 의미인줄도 모르고 봤던 프랑스 영화만큼 문화에 대한 우리들의 갈증을 채워준다. 접하기 힘든 우수 단편 영화와 영화학도들의 작품, 독립영화는 때리고 부수는 액션, 벗고 헉헉대는 에로 영화보다 시선은 덜 자극하지만 마음 밭만은 더 촉촉하게 적신다.

’영화보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냥 놓치고 지나치기 쉬운 장면을 읽는 안목을 배우고 더 짜릿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영화 읽기 훈련과 토론도 이어진다. 영화 상영 모임은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30분 3400 W. 6th St., Los Angeles 4층 407호(6th St.과 Catalina 코너)에서 열린다. 문의 이기성 (213) 500-3577,
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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