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은 명배우 게리 쿠퍼가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쿠퍼는 100년전 이날 태어나 1961년 5월13일 암으로 6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래서 LA의 아카데미 본부를 비롯한 전미국의 박물관과 대학극장 그리고 고전영화전문 TCM-TV등에서는 이달 한달 내내 쿠퍼의 영화상영과 함께 전시회를 열고 이 멋쟁이 스타를 추모하고 있다.
애칭 ‘쿠프’라 불린 게리 쿠퍼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서부의 사나이다. 꽉 다문 입과 큰 키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총을 찬 채 약간 비틀대는듯한 자세로 걷는 그의 모습은 쿠퍼의 본격적인 웨스턴 <평원아>(The Plainsmanㆍ1936)에서 부터 주제가가 멋 있는 <교수목>(The Hanging Treeㆍ1959)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유명한 웨스턴으로는 이밖에도 <버지니안>(The Virginineㆍ1929), <서부인>(The Westernerㆍ1940), <달라스>(Dallasㆍ1950)와 버트 랜카스터와 공연한 <베라 크루스>(Vera Cruzㆍ1954) 및 이색적인 <서부의 사나이>(Man of the West ㆍ1958)등이 있다. 그중에서 최고걸작은 쿠퍼가 오스카상을 탄 <하이 눈>(1952).
쿠퍼는 그러나 웨스턴 외에도 다양한 장르에서 각기 다른 역을 맡아 다채로운 연기를 했다.
달콤한 로맨스로는 중년 말미의 바람둥이 쿠퍼가 소녀 같은 오드리 헵번과 메이 - 디셈버 로맨스를 연 <하오의 연정>(Love in the Afternoonㆍ1957)이 있고 코미디와 로맨스가 깨소금맛 나게 섞인 것으로는 그가 언어학자로 나온 <정열 덩어리>(Ball of Fireㆍ1941)가 있다.
드라마로는 양키즈 강타자 루 게릭으로 나온 <양키즈의 자랑>(The Pride of Yankeesㆍ1942)과 남북전쟁이야기 <우정있는 설복>(Friendly Persuasionㆍ1956)등이 좋다. 또 액션과 모험과 로맨스가 있는 것들로는 잉그릿 버그만과 공연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om the Bell Tollsㆍ1941)와 그의 첫 오스카수상작인 1차대전 영웅 앨빈 요크의 실화 <요크 상사>(Sergeant Yorkㆍ1941)등이 멋있다.
1901년 5월 7일 몬타나서 태어난 쿠퍼의 본명은 프랭크 제임스 쿠퍼. 그는 일찍부터 그림을 잘 그렸는데 대학 졸업후 한때 지역신문에 시사만화를 그렸다. 쿠퍼가 LA에 온 것도 만화가로 성공하기 위해서였으나, 뜻대로 안되자 한동안 세일즈맨을 하다가 웨스턴의 엑스트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몇편의 웨스턴을 거쳐 최초의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무성영화 <날개>(Wingsㆍ1927)에서 1차대전 공군파일럿역으로 각광을 받았다. 큰 키에 검은 머리 그리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유혹적인 미소를 지녔던 쿠퍼는 결혼전에는 클라라 보우 등 할리우드 글래머걸과 숱한 염문을 뿌렸었다.
쿠퍼는 스타티를 안낸 스타였다. 남녀모두 그를 좋아한 것도 쿠퍼가 상냥하고 예의바르고 매우 나이스한 사람이었기때문이다. 핸섬하니 매력적이요 머무적대는 듯한 태도를 지녔으면서도 과묵하고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쿠퍼의 딸 마리아 쿠퍼 제니스는 "아버지는 정의와 원칙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쿠퍼의 이런 소신을 잘 보여준 것이 보안관 윌 케인(작품 ‘하이 눈’)이다. 막 결혼한 아내(그레이스 켈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찾아오는 킬러들을 맞는 그의 의연한 자세야말로 과묵한 행동의 사나이의 본보기라 하겠다.
한국일보 LA미주본사편집위원ㆍLA영화비평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