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화 현장 스탭 처우개선 움직임

2001-05-2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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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낮은 임금과 불공정한 계약 관행 등 국내영화 현장 스태프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영화계 행보가 분주해지고 있다.

영화인회의는 `제작 환경 및 근로조건 개선위원회’를 출범시켰는가 하면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진흥위원회 등 영화단체들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스태프들의 처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져나온 것은 충무로 스태프들의 인터넷모임인 `비둘기둥지’가 발족하면서부터.


`공정한 영화 환경을 만들어 보자’며 몇몇 뜻있는 사람들끼리 지난 3월 중순 개설한 이 인터넷 카페에는 한달 반 동안 연출부, 촬영부, 조명부, 제작부 등 현장 스태프들과 영화학도 등 8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들 중 몇몇은 지난 달 열린대종상 시상식때 `40억 영화에 연봉은 200만원’ `제작자=반칙왕’ `표준계약제 실시하라’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이들이 거리까지 나서게 된 데는 한국 영화의 열악한 제작 환경때문이다.

40억-50억원이 넘는 대형 영화가 속속 제작되고, 한 작품에 6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는 등 한국 영화계의 파이는 커졌지만 스태프들의 임금은 아직까지 최하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

영화 <순애보>의 연출부였던 A씨는 "보통 영화를 만들 때 조감독과 연출부 3-4명이 함께 영화사와 계약을 한다. 편당 약 2천만원씩을 받는데 조감독이 이 중 반을가져가고 나머지 3-4명이 남은 1천만원 중 경력, 경험 등을 고려해 다시 나눈다. 연출부 막내일 경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받는 돈은 200만-300만원만에 불과하다"고말했다.

영화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는 촬영기간 6개월, 준비기간 2개월, 후반작업 2개월등을 포함해 약 1년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경험이 적은 스태프의 연봉은 불과 200만-300만원이란 얘기다. 참고로 우리 나라 근로자들의 월 평균 임금은 약 121만원이다.

특히 계약서에는 정확한 계약 기간이나 연장 근무 등이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한 번 계약을 맺은 스태프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영화 한 편에만 매달려야 한다. A씨는 "중간에 너무 힘들어 그만두게 돼도 돈 한 푼 못받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털어놨다.

촬영 감독 B씨는 "스태프들은 프리랜서이기때문에 고용보험, 상해보험 등은 생각할 수 도 없으며, 계약금도 한 번에 주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 2-3번에 걸쳐 나눠주기때문에 십 몇 년씩 영화판에 있어도 돈을 모을 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 그동안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던 이유는 영화계 내에 영화를 `노동’이라기보단 `문화행위’로 보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은 `영화는 배고픈 예술이다’ `너희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로 이들을 달래왔고, 충무로에는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일만할 수 있게 해달라’는 `영화광’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최근 영화가 `돈이 되는’ 산업으로 바뀌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영화가 흥행할 경우 주연 배우나 감독, 제작자들은 `돈방석’에 오르지만 스태프들의 열악한 근로 조건에는 변함이 없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스태프들이 본격적으로 이를 문제 삼고 나선 것.

`비둘기둥지’의 회원이자 <강원도의 힘> <파이란>등의 촬영감독인 김영철(35)씨는 "제작자들은 스태프들에게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을 오래 할 수없는 근로 조건에서 어떻게 전문성을 키울 수 있겠느냐"며 "계약 기간과 연장근무에관한 조항 등을 명시한 표준계약서 도입과 고용보험과 상해보험의 즉각 실시, 최저생계비 보장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제작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영화인회의는 최근 `제작환경및 근로조건 개선위원회’를 발족하고, 이현승 감독을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이감독은 "영화계의 근로 조건은 단순히 임금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도제 시스템 위주로 돼있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면서 "스태프들의 근로 조건을 향상시키면서도 제작의 질 저하를 가져오지 않는 한국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영화인회의는 우선 회원 600여명을 대상으로 1차 실태 조사에 들어갔으며, 공청회 등을 마련해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또 한국영화제작가협회도 영화진흥위원회에 국제적인 계약 사례 연구 등을 문의해 놓은 상태이며 제작자, 투자자, 감독, 스태프 등 영화인들이 함께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간담회를 준비 중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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