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죽음과 변용’을 연상케 하는 구원과 재생에 관한 아름답고 명상적이며 또 강렬한 일본 영화다. 소녀 코주에(아오이 미야자키)가 관객을 향해 선 채 "이제 곧 해일이 몰려와 우리 모두를 휩쓸어 갈 거야"라고 독백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독백은 작품의 큰 테두리를 예고한다.
뜻하지 않은 상황이 남겨놓은 대재난 같은 후유증과 고통과 무기력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이것에 어떻게 대응하면서 다시 삶의 목적을 찾는가 하는 영혼의 여정기다. 아름다운 대형 흑백화면과 빈틈없는 구성을 갖춘 3시간40분짜리 영화로 서서히 진행되는 내면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재생과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일본 남서부 큐슈에서 어느 여름날 버스 하이재킹 사건이 일어난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버스 운전사 마코토(코지 야쿠쇼)와 틴에이저 두 남매 나오키(마사루 미야자키)와 코주에.
사건의 충격으로 마코토는 배낭 하나만 등에 진 채 가출한다. 한편 사건 후 완전히 말문을 닫은 나오키와 코주에를 두고 둘의 엄마가 가출한 뒤 아버지 마저 사고로 죽으면서 남매는 볼품 없이 큰집에서 정크푸드로 끼니를 때우며 두문불출하고 산다.
마코토는 2년 후 귀가하나 이미 아내는 고향으로 떠나버렸다. 마코토는 나오키 남매를 찾아가 한 집에 함께 살면서 두 남매를 엄마와 아빠처럼 돌보면서 인간은 철저히 남을 위해서만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한다. 여기에 나오키의 대학생 사촌 아키히코(요히치로 사이초)가 3인의 상처받은 사람들의 관찰자로 개입하는데 그는 이 침묵 같은 영화에서 코믹한 구실을 한다.
이들 4명의 아무 일 없는 삶을 둘러싸고 동네에서 연쇄 여자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에 충격을 가한다. 그리고 마코토는 고물 미니버스를 한대 사 내부를 개조한 뒤 나오키 남매와 아키히코를 태우고 무작정 길을 떠난다. 이 여정을 통해 마코토와 나오키 남매간에는 가족적 관계가 형성되고 로드무비는 바다를 종점으로 희망의 씨앗을 남겨 주고 끝난다.
카메라가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는 길은 실제의 길이자 버스에 탄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의 길이다. 천재지변 같은 사건을 당한 이들이 이 여정을 통해 고통의 피부들을 벗겨내고 재생하는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기본적인 것만 있는 값진 성찰의 작품으로 마코토역의 일본 베테런 배우 코지 야쿠소(’춤을 추실까요’ ‘뱀장어’)의 꾸밈없이 깊은 연기가 훌륭하다. 나오키 남매역의 배우들은 실제 남매로 무언의 연기를 차분하니 잘 한다. 지난해 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수상작. 감독과 각본 신지 아요마.
Shooting Gallery. 17일까지 페어팩스 극장(베벌리와 페어팩스). 상영시간 하오 1시45분과 7시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