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풍요 속 빈곤 시적으로 담은 기록영화

2001-04-14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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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줍는 사람들과 나(The Gleaners and I)

프랑스 뉴웨이브의 대모라 불리는 칠운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프랑스의 시골과 도시를 돌며 찍은 기록영화로 줍는 사람들의 얘기다. 바르다는 작고한 자크 데미 감독(’쉐브르의 우산’)의 미망인으로 자기 해설로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생의 종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겸손한 자세로 작품 속 줍는 사람들처럼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주워 담고 있다.

’글리너’라는 말은 이삭을 줍는 사람을 뜻하는데 바르다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 바르다는 시골과 도시를 누비고 다니면서 추수 뒤 포도, 토마토, 감자, 사과농장에서 남은 것들을 줍는 사람들과 또 도시의 새벽 과일 야채시장이 철시한 뒤 남은 것을 줍는 사람들을 통해 풍요 속의 빈곤과 과소비를 관심 있게 관찰하고 있다.

일종의 사회문화 비판영화이나 바르다는 그런 낭비와 과소비를 질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으면서 줍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느끼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 바르다는 또 단순히 먹을 것만 줍는 사람들뿐 아니라 폐품을 주워 창조적 작품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기록했는데 정크와 창조와 예술의 관계 그리고 폐물 이용의 윤리를 현자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한 폭의 사실화요 아름다운 유화 같은 작품인데 바르다는 영화 중간중간 미술관을 찾아 줍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그림 속 인물이 되어 포즈를 취하기도 하면서 미소를 짓게 한다. 줍는 사람들도 여러 가지다. 가난해 식량으로 줍는 집시, 실직 트럭운전사, 농민들이 있는가 하면 석사학위까지 받은 한 남자는 채식주의자로 야채시장에서 주운 것들로 식량을 삼는데 이 사람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버려진 멀쩡한 야채, 과일, 빵 등을 들어 보이며 낭비를 고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에서는 16세기 때부터 줍는 것에 대한 법령이 있었다는 것. 이것은 지금까지 효력을 갖고 있는데 이 법령은 가난한 사람들이 추수 뒤 남의 농장이나 밭에 들어가 남은 것을 줍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바르다가 마치 자신의 과거에서 떨어져 남은 것들을 줍는 듯한 일기형식의 작품인데 그의 인간성과 통찰력과 사려 그리고 철학이 가득히 담겨 있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바르다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자기가 주워온 바늘 없는 탁상시계를 창가에 놓으며 "바늘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삶의 예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버리고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뮤직홀(9036 윌셔. 310-274-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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