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2026-06-08 (월) 12:00:00 전지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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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파이크스 픽(Pikes peak)산정에는 아직 눈이 가득한다. 설산을 바라보며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두번째 함께 했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다음 여행을 준비했던 우리들. 나이와 건강 상태를 미쳐 가늠하지 못해, 약간의 무리를 했었다. 돌아와 누구는 폐렴으로 고생했고, 또 누구는 한달 이상을 골골 거리며 아팠다. 나도 빼 놓을 수 없이 오랜 여독에 시달렸다.

‘청춘은 마음’ 뿐이었고 건강상태는 나이와 세월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을 계획하였던 우리들. 아마 한 달 여씩 떠나는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조바심때문이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다음 여행을 약속하며 똑같은 실수는 없어야 겠다고.

작년 가을 부터 준비해 왔던 여행. 다음 주 길을 떠난다. 이번 여행은 지난번에 비해 훨씬 쉽게 계획해 보았다. 먼지 쌓였던 가방을 털고, 다시 한번 꼼꼼히 일정을 살피고, 예약 상황들을 점검한다. 몇 번이나 만나서 서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리고 공항에서 만나는 시간을 약속하는 것으로 시작이다.


작가 김영하는 여행지에 도착해 호텔 방문을 열고 정돈된 흰색 시트를 만나면 삶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신선한 기분 때문에 늘 여행을 간다는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곳은 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는 늘 기분을 업되게 한다. 고행 길이였던 여행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뒤돌아 보면 좋은 추억이 되어 켜켜히 쌓인다.

언제 일지 알 수는 없지만 더는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지 못하는 그 시간이 올 때, 쌓인 추억의 곳곳을 하나씩 들추며, 지난 이야기 두런두런 이어 갈 수 있다면, 여행의 충분한 조건이 아닐까? 세계는 넓다. 요즈음 같이 여행 유튜버나 블로거들이 쏟아내는 세상. 굳이 움직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시선으로, 나의 감정으로, 나의 발걸음으로, 새로운 세상과 호흡하고 싶다면, 그 이유가 될까? 그곳의 공기, 골목을 따라 걷는 발걸음, 현지의 맛 등등. 여행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의 것이다. 내가 느끼는 그곳을 내 추억 속에 소중히 담아 두기 위해 떠난다면 답이 될까? 마음은 벌써 수천장의 사진과 영수증과 메모들을 정리하는 나를 본다. 추억은 빨강이었다가 푸르고, 흐렸다가 개이고, 추웠다가 더운, 알 수 없는 맛이었다가 친숙한 것으로 다가 온다. 삶을 지탱 해 줄 추억 만들기의 프로젝트는 우리들의 걸음 속에서, 신나는 휘바람이 되어 동행한다.

눈 쌓인 로키산맥의 산정을 바라보며 집에서 떠나는 길. 다을 곳은 초록이 가득하다. 여행 내내 가벼운 흥분의 두런거림은 이어질 것이고, 이야기 속에서 행복과 즐거움 가득한 여정이 될 것 같다. 가보지 못했던 곳에 대한 달뜬 기대까지 짐 속에 밀어 넣으며, 다른 곳의 다른 계절을 찾아 떠난다. 떨리는 마음, 오랫동안 함께 할 것 같다.

<전지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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