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승세의 미국, 허둥대는 중국

2026-06-08 (월) 12:00:00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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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4월 무렵이었던가.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인도차이나반도(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정세를 설명하면서 처음으로 ‘도미노가 무너지는 현상’에 비유했던 게.

이후 도미노 이론(Domino Theory)은 냉전 시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의 대외 정책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정치·군사 이론으로 거의 공식화 되다 시피 했다.

‘한 나라가 공산화되면 마치 도미노 블록이 차례로 쓰러지듯 이웃 국가들도 연쇄적으로 공산화될 것’이라는 가설이 도미노 이론이다. 아주 틀린 논리는 아니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이웃인 라오스와 캄보디아에도 공산정권이 들어섰다는 점에서 절반정도는 맞았다.


그러나 당초 우려와는 달리 태국, 필리핀, 호주, 인도 등은 공산화 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도미노 이론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 했다는 비판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냉전 2.0 시기를 맞아 새로 유행성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다.

기존 패권국가와 새로 떠오르는 신흥 강대국이 부딪히며 갈등을 겪다가 결국 전쟁으로 치닫는 위험한 역학 관계를 뜻하는 국제정치학 용어로 하버드대학의 그레이엄 앨리슨이 그의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사용해 대중화됐다.

‘미국과 중국은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을 뛰어넘고 대국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가’- 시진핑이 트럼프의 정상회담에서 던진 일갈(一喝)이다. 이후 그 발언의 배경, 그리고 투키디데스 함정, 그 자체 논리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오직 미국이 태도를 바꾸는 한에서만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시진핑 발언과 관련한 군사 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중국이 기술 강국, 경제 강국, 군사 강국으로 가는 길에서 미국은 잠자코 비켜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결국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투키디데스 함정이다.’ 시진핑 발언의 진의를 이렇게 해석하면서 사실상 준엄한 경고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도 없다고 할까. 그게 시진핑 체제 중국의 투키디데스 함정 이론 접근방식이란 거다. ‘내로남불’행태는 중국 언론들의 보도에서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대만문제뿐이 아니다. 홍콩의 정치시스템, 중국의 인권상황, 티베트와 신장의 현지 사정 등에 대해서 미국은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모든 것이 레드 라인으로 중국이 중국의 길을 가는데 일체의 비판이나 간섭을 받아드릴 수 없다는 게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 시 중국관영 언론들이 보인 하나같은 논조였다는 지적이다.

이와는 별도로 오늘날의 국제적 갈등을 설명하는 데 투키디데스 함정 이론이 오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역사는 분명히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2개의 에피소드가 정확히 일치하는 법은 없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역사적 원칙이나, 일반법칙 같은 것은 없다. 전쟁이나, 혹은 평화를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주체성(human agency)이다.’

모던 에이지의 지적이다. 투키디데스 함정 이론은 패권국가와 신흥강대국 간 전쟁의 가능성을 제시할 뿐, 전쟁의 불가피성을 단정 짓고 있지는 않는다는 게 이어지는 설명이다. 도미노 이론(Domino Theory)처럼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적용할 때 무리가 따른다는 거다.

그 논란은 일단 그렇다고 치고, 투키디데스 함정의 무대세팅에서 보듯이 미국은 신흥 강대국의 부상을 초조히 바라보며 쇠락하고 있는 기존 파워이고, 중국은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뻗고 있는 신흥 파워인가.

‘모든 기준으로 보아 미국은 여전한 상승세의 수퍼 파워다. 반면 중국은 버거운 자체의 실존 문제에 허둥대며 뒷걸음 치고 있는 파워다.’ 후버 연구소의 빅터 데이비스 핸슨의 지적이다. 투키디데스 함정 이론을 미국과 중국관계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얘기다.

수퍼 파워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여건의 하나는 전략 자원, 혹은 생존 자원으로 분류되는 에너지와 식량을 얼마나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전 세계 최대의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반면 중국은 70%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식량 수출국으로 농업 생산에서도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은 30% 이상의 식량을 수입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중국의 GDP는 미국 GDP의 60%에 불과하다.

기술력, 핵전력, 재래군사력에서도 중국은 미국의 상대가 안 된다. 요약하면 경제, 문화, 군사, 정치적 파워에서 미국은 중국에 비해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는 점이다.

반면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은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 여부에서 인구절벽에 따른 심각한 경제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들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거기에다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제거, 뒤이은 이란 전쟁 이래 국제정세는 중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점 등을 지적, 중국이 미국에 필적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진단은 오판이라는 게 핸슨의 지적이다. 말하자면 중국의 미국추월은 절대 불가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맞는 진단인가, 아마도….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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