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한인들과 너무 어울리지 말라”는 조언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한인 업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교회와 사업, 돈거래 문제로 상처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흔한 소재였고, 많은 한인들이 “미국 사람보다 한인에게 더 크게 데였다”는 기억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
한핏줄 한민족임을 자랑하고, 수많은 외세 침략 속에서도 함께 뭉쳐 나라를 지켜왔던 한국인들이다. 해외에 나와서도 특유의 응집력과 근성으로 이민사회를 일궈냈다. 그런데 정작 타국에서는 “같은 한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이어지는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최근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역시 그런 복잡한 단면을 떠올리게 했다. 스시집을 운영하던 69세 한승호씨는 자신이 입주해 있던 건물의 한인 랜드로드와 부동산 개발업체 관계자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한씨는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서 총격을 가한 뒤 인근 콘도 단지로 이동해 추가 범행을 이어갔고,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다 경찰에 체포됐다.
사건이 텍사스에서 발생했기에 현장 취재는 어려웠고, 대부분 전화 통화에 의존해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사건 다음 날 건물 입주자와 인근 주민, 한인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사건의 정확한 배경과 책임 소재는 수사와 사법 절차를 통해 가려져야 할 부분이지만, 한인들 사이의 금전·사업 갈등이 결국 극단적인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착잡함을 남겼다.
온라인 반응 역시 복잡했다. 기사 댓글과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사건을 둘러싼 여러 추측과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일부에서는 가해자를 돕기 위한 움직임까지 거론됐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한인사회 내부의 피로감과 갈등 구조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일을 취재하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기억이 있다. 지난 1999년 LA 한인타운을 충격에 빠뜨렸던 ‘채프만 플라자 총격 사건’이다. 당시 일식집 ‘닌겐’ 업주 이기태 씨는 보증금 반환 문제로 건물주와 갈등을 빚다 사무실을 찾아가 건물주와 매니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27년이 흐른 지금, 달라스에서 또다시 비슷한 비극이 반복됐다.
한인사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종종 반복된다. 같은 한인들끼리 이해관계를 두고 다투거나 갈등이 깊어지며,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인 조심하라”는 말은 자조를 넘어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경고처럼 굳어졌다.
문제의 뿌리는 결국 공동체 내부의 구조적 피로감에도 있는지 모른다. 단체와 조직은 많지만 공동체 전체를 아우르는 힘은 약하고, 이해관계는 쉽게 갈라진다. 가까운 공동체일수록 더 강한 신뢰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서로를 돕고 공동체를 지탱해온 움직임 역시 분명 존재한다. 위기의 순간마다 보여준 한인사회의 저력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오랜 시간 누적된 불신과 피로가 공동체 내부에 함께 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가 된 뒤 비슷한 메시지의 칼럼을 여러 번 써왔다. 사건은 반복되고, 글도 자연스레 같은 주제를 맴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럼에도 계속 쓰는 이유는 결국 안타까움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타국에서 서로를 가장 경계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조차 단순한 선악으로 정리되지 못할 만큼 복잡한 감정이 쏟아지는 공동체의 모습이 서글프다.
언젠가는 “한인 조심하라”는 말 대신 “그래도 결국 한인끼리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들리는 한인사회가 되길 바란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 지금의 냉소와 불신을 당연한 문화로 물려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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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