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디딜 때마다 마른 흙먼지가 풀썩이며 올라와 운동화 앞코로 내려앉았다. 발밑에선 정오의 햇살을 업고 개미들이 종종걸음을 하고 있어서 까치발로 피해 가느라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봄빛이 무르익던 날, 서른 해를 걷고 뛰며 드나든 길에서 나는 처음 보는 장면과 마주쳤다. 집 뒷산 멀홀랜드 드라이브 서쪽 차량 통제 구역 트레일에 접어들었을 때,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놓인 흰색 소파를 발견했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팔걸이 없는 1인용 소파는 먼지를 얇게 뒤집어쓴 채였지만, 커버용 흰 면 천에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오히려 눈부시게 도드라졌다. 이 산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 그런데도 엷게 퍼져 있는 구름과 어울려 봄날의 보헤미안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언제든 떠날 채비가 되어 있는 방랑자처럼.
정오 무렵이라 그런지 산악자전거를 타거나 산행하는 사람들 누구도 없다. 나만의 몽상에 빠져들기 좋은 시간이다. 하얀 소파는 언제, 왜 이곳으로 왔을까. 소파는 알고 있을 텐데 묵묵부답이다. 까마귀 떼와 딱새들이 분주히 오가는 곳인데도 새똥 얼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난밤부터 이른 아침 사이 옮겨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추론을 하며 나는 쉽게 떠나지 못했다. 멀찌감치 또 가까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봄볕과 구름과 소파와 나 사이에 흐르는 교감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이 순간을 흩어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독일 사진작가 호르스트 바커바르트(Horst Wackerbarth)의 ‘붉은 소파’가 떠올랐다. 그는 강렬한 붉은 벨벳 소파 하나를 들고 뉴욕의 번화가부터 사막의 모래 언덕까지 세계 곳곳을 떠돌았다. 붉은 소파 위에 세상의 여러 얼굴들을 앉히고 그들이 말하는 삶의 의미와 행복을 기록했다. 낯선 장소에 놓인 소파 위에서 사람들은 이름과 역할, 계급장을 내려놓고, 잠시 한 사람으로 머문다. 그저 앉아 있는 존재로.
그 붉은 소파 위에서 한 사람은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다면, 특별한 성취의 날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저녁이었다.”라고.
집 안의 깊숙한 안쪽, 하루의 끝에 몸을 기대는 내밀한 안식처인 소파. 그런 소파가 봄날 자연으로 나온 순간, 그것은 마치 행위 예술가가 펼치는 ‘작은 무대’처럼 사람을 멈춰 세운다. 이걸 여기까지 옮기느라 숨을 내뱉었을 하얀 소파의 주인, 그것을 발견하고 잠시 멈춘 나, 그리고 멈춰 서게 될 또 다른 누군가. 비록 얼굴을 알지 못하지만, 이 흰 소파를 매개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셈이다. 길 위에서 만난 소파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과정 속에도 예술적 순간은 존재하는 것이리라.
봄바람이 스칠 때마다 주변의 풀꽃들이 소파의 겨드랑이를 간질이자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앉아보라고, 그리고 같이 길 떠나 보자고. 나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쉼표 같은 봄날 한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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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라 수필가 미주문협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