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로 나아가는 길목은 이다지도 아픈 것인가. 보타닉 가든에는 겨우내 품었던 생명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려는 산고의 숨결이 허공에 가득하다.
세상에/꽃 한 송이 피는 일이/
어찌 그리/눈물겨운 일인가.
김용택 시인의 시처럼 자연도 역사를 눈물겹게 창조한다. 나는 지금 자연의 산실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수령이 꽤 있어 보이는 둥근 선인장이 스물한 송이의 꽃망울을 면류관처럼 머리에 이고 분만 중이다. 배를 땅바닥에 깔고 기진해 있으면서도, 누가 어린 꽃잎에 손이라도 댈까 싶어 단단한 가시로 보호막을 쳐 놓았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 일은 우주를 내 안에 품는 일이고, 탄생의 기적은 어디에도 견줄 바 없는 특별한 기쁨이다.
올해 나의 봄은 아릿한 통증으로 찾아들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나뭇잎을 어루만져 잠을 깨우면, 예전처럼 그저 “예쁘다, 곱다” 하며 대견해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나무의 속내까지 살피며 마음을 끓이고 있으니 주책이 따로 없다. 아마도 이것이 세월이 가져다준 혜안이 아닐까. 하기야 오랜 세월 양식을 축낸 값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꽃보다 그 속에 쌓인 시간을 먼저 보게 된다.
장미 동산은 이곳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소다. 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초여름까지 10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한 품종이 천상의 하모니를 이루어낸다. 1,000여 그루의 장미들은 바닷바람에 고단했던 겨울을 내색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하여 봄을 노래한다. 추위를 견딘 만큼 이들의 기쁨은 더욱 크리라. 세월 탓인지 올해 들어 먼저 간 친구가 더욱 생각난다. 추억이라도 꺼내보려 조급한 발걸음을 했더니 자연의 분만 과정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겉과 내면의 차이는 사람이나 자연이나 다르지 않고, 모두 인고의 물줄기로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하늘을 향한 꽃봉우리들이 이슬을 머금고 가슴을 열기 시작한다. 몇 년 전인가 장미 축제가 열렸던 날, 친구는 오랜만에 장미밭에 동화되어 소녀처럼 꽃이 되었다. 가냘픈 두 어깨에 앉아 있는 삶이 무거워서 선인장처럼 가시를 돋구며 살던 그녀가 그날에는 볼 빨간 한 송이 장미로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마음이라도 여유롭게 살자 하며 동행천리를 약속했건만, 심성이 여려서일까, 그녀는 어느 날 속절없이 떨어진 꽃이 되었다. 탄생의 아픔에는 무지개가 돋고, 이별의 진자리에는 가시지 않는 향내가 배인다. 나는 친구의 향기를 따라 봄이면 장미 동산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날, 묵직한 관이 땅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생시에 사랑했던 사람들이 눈물로 인사를 건네며 꽃을 던졌다. 나도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서 있었다. 이 꽃을 던지면 영원히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몸이 얼어붙었다. 끝내 내 손에 든 장미도 관 위에 떨어졌다. 마음의 거리는 그대로인데, 물리적인 거리는 아득히 멀어졌다. 아, 이것이 이별이라는 것이구나.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마음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는다. 장미꽃을 든 여자의 마음에는 청춘을 함께 건너온 친구가 꽃이 되어 시들지 않는다. 꽃은 언제나 시간을 품고 피어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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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규 수필가>